하루 뒤면 해가 바뀐다. 어느덧 코로나19 사태 3년차. 희망보다는 우울함이 앞선다. 이런 와중에 내년 3월 초 탄생할 새 정권 역할은 막중하다. 무엇보다 코로나 블루의 짙은 먹구름을 걷어주길 많은 이들이 소망한다. 코로나로 타격 입은 이들에 대한 지원, 4차산업혁명 대비, 미·중 갈등 속 국익 극대화, 사회 통합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하지만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고 실행에 옮겨야 할 새 정부 앞에 설거짓거리가 잔뜩 있는 점은 불안하다. 정부가 대선을 의식해 뒤로 넘긴 민감한 과제들이 그것이다. 야당 후보가 당선될 경우 막막할 수준이다. 여당이 정권 재창출에 성공해도 마냥 좋을 순 없다. 정부가 여당 후보 지원 차원에서 미룬 많은 숙제들은 출범 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득표에는 도움 됐을지언정 국가 경영에 부담 줄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발등의 불은 물가 관리다. 정부는 최근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을 내년 3월까지 동결하는 대신 4월부터 10월까지 각각 2차례, 3차례씩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전기요금 인상률은 41년 만에 최고다. 지난 4년여간 인상 요인이 있을 때 적절히 분산해 반영했으면 됐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눌러 놓다가 대선 이후 한꺼번에 가격이 뛰도록 했다. 여파가 더 걱정이다. 각각 10년, 6년째 동결돼 온 철도 요금과 고속도로 통행료 인상 요구를 거부할 명분이 없어졌다. 적자 투성이 공기업들은 호기를 맞았다. 지하철 버스 택시업계는 가만 있을까. 물가가 오르면 화폐 가치가 떨어지고 자산 가치가 상승한다. 누가 집권하든 부동산 시장 안정이 급선무인데 자칫 뿌리째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정권의 고별 선물치고는 고약하다.
코로나 피해 계층에 대한 배려 정책은 내년 3월에 종료되게끔 절묘하게 설계됐다. 소규모 사업장에 대해 고용보험·산재보험료 및 전기·가스요금 납부를 유예해주는 것도, 자영업자에게 대출을 만기연장 해주거나 상환을 유예하는 것도 내년 3월까지다. 경제 지형을 넓히는 데 필요하지만 농어민 반발이 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신청도 내년 4월로 미뤄졌다. 당초 늦어도 올해 안에 신청할 예정이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계속 늦춰졌다. 개방도가 높은 CPTPP에 농업계의 저항이 감지되면서 눈치 본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국가의 미래와 직결되는 연금 개혁은 21세기 들어 유일하게 문재인정부만 외면했다. 연금 시한폭탄은 새 정부에 떠넘겨졌다.
제 할 일 미뤘으면 남의 뒷처리를 위해 여윳돈이라도 충분히 남겨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다. 정부는 2022년 세출 예산의 73%를 상반기에 조기 집행하기로 했다. 내년 총예산(607조7000억원)에서 기금을 빼고 각 부처에서 쓸 수 있는 예산 497조7000억원 중 363조5000억원이 이때 풀린다. 임기 5개월 남은 정부가 사상 최대 상반기 집행률을 기록하게 됐다. 내년 부처 중점 추진과제 210개 중 109개가 1분기에, 48개가 대통령직 인수·인계 기간이 포함된 2분기에 잡혔다. 차기 정부가 자기만의 정책을 펴려면 빚을 내야 하는 구조다. 여든 야든 집권 후 50조~100조원가량의 소상공인 손실 보상을 시작할 텐데 부채가 눈덩이처럼 커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내년을 어떻게든 넘긴다 치더라도 이번에는 재정건전성 목표가 발목 잡게 생겼다. 이 정부는 임기 중 예산은 200조, 국가채무는 400조원을 늘려놨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향후 5년간 한국의 국가빚 증가 속도가 주요 35개국 중 1위가 될 것이라 했다. 실컷 돈잔치 벌인 뒤에 후임에게는 긴축을 주문했다. 기획재정부는 2023년부터 3년간 연평균 총지출 증가율이 4.6%가 되도록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세웠다. 현 정부 지출 증가율(8.5%)의 반토막 수준이다.
통계만 보면 문재인정부는 공공요금을 안정시켰고 임기 마지막까지 재정 수단을 통해 경제와 서민을 챙겼다는 평을 들을 것 같다. 반면 후임 정권은 임기 첫해부터 물가 불안, 재정 고갈, 자영업 생존 문제와 맞닥뜨릴 처지에 놓였다. 설거지하는데 진 빠지고 텅빈 금고에 울화가 치밀지 않을까 싶다. 딱하긴 하지만 어쩌겠나. 해결하는 수밖에. 이를 위해선 국민 통합과 여야 소통, 면밀한 정책 통찰, 기민한 대응이 필요한데 여야 대선 후보들의 능력과 성향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내년에는 코로나 블루에다 새 정부 블루까지 겪을 판이다.
고세욱 논설위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