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족에서 시작해 구성원들이 하나둘 떠나고, 70대 노인이 돼 고향에 둘만 남은 엄마 아빠는 이제 와서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르다며 구시렁거리는 일이 잦다. 그러면서도 늘 혼자 사는 나를 걱정하기에 “혼자 살면 얼마나 편한데. 엄마 아빠도 몇 년만 혼자 살아보라면 어떨 것 같아? 어디서 뭐하면서 살고 싶어요?” 했더니 그럼 너무 좋겠다며 낯선 상상을 펼친다.
만약 혼자 살 수 있다면, 엄마는 노인이라 지하철도 공짜니까 서울에 와서 돌아다니며 좋은 거 보고 듣고, 종종 나랑 만나 밥도 먹으며 살고 싶다고 한다. 아빠는 시골에서 지내면서 전국으로 자동차 여행을 다니겠단다. 엄마가 “나는 괜찮은데 네 아빠는 혼자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못 살 거야.” 호언장담을 하자 아빠가 분해서 “어디 한 번 봐. 잘만 살지” 한다. 진짜 얼마간 각자 살아보면 두 분 사이도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취업이나 이혼, 사별 등 각자의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학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혼자 살기 시작했고 어쩌다 보니 여전히 혼자 살고 있다. 부모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다가 처음 혼자가 됐을 때는 심심하고 무섭고 불편했지만 어느새 아주 자연스럽다.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내가, 나를 위해 결정하고 행동하고 책임져야 한다. 청소와 빨래, 식사를 해결하고 깜빡이는 전등을 갈거나 갑자기 작동하지 않는 보일러와 씨름하는 일들이 어릴 때는 벅찼지만, 지금은 레벨이 높아져 한결 수월하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도 많아졌다. 혼자 있는 시간에 나 자신을 더 많이 발견하고 돌볼 수 있다. 무엇보다 자유롭다.
그렇다고 비혼을 선언하거나 혼자서만 살기로 작정을 한 것은 아니다. 가족들의 한바탕 웃음소리가 그립기도 하고 때때로 외롭기도 하다. 밖에서 힘든 일들이 있는 시기에는 집 안이 엉망이 될 때까지 방치해 두기도 한다.
특히 몸과 마음이 아플 때 스스로 회복하고 힘을 내는 일이 쉽지는 않다. 1인 가구 생활이 지겹고 서럽게 느껴질 때다. 그래서 결혼한 친구와 선배에게 물으면 “결혼해도 혼자 병원 다녀” “결혼해도 고민 상담은 친구한테 해” “결혼해도 외로워” 같은 허무한 대답들이 돌아온다. 하긴 요즘은 혼인신고 대비 이혼율이 50%라는데 괜한 질문을 했다.
유튜브에서도 자발적 1인 가구로 지내는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40대 비혼 남녀의 인터뷰에 공감하고, 20대 청년이 독립하면서 영끌해 아파트를 샀다는 영상도 있다. 한 다큐 프로그램에서는 배우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별거하는 노년 부부가 소개됐다. 77세 남편과 68세 아내가 5년째 각각 1인 가구로 살며 친구처럼 잘 지내고 있다. 나이를 짐작하기 힘들 만큼 건강하게 스스로의 생활을 잘 꾸려간다.
댓글들을 읽다 보면 정말 1인 가구가 대세다. “언제까지 혼자 살 수 있을까요”라며 노년을 걱정하는 1인 가구의 영상에 “아플 때 119 부르면 금방 와요” “둘이 살면서 외로운 건 더 지독해요” “혼자 사는 것도 능력이에요” “혼자 사는 사람끼리 가끔 차라도 마셔요” 같은 댓글이 달려 있다. 질병과 외로움의 해법은 더 이상 가족이 아니다. 2인, 3인 가구 구성원들도 1인 가구를 꿈꾸는 경우가 많다. 정서적 교류와 공감 없이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사는 것만으로 우리는 행복할 수 없다. 혼자 살아도, 멀리 살아도, 대화하고 연결될 수단은 많아졌다. 1인 가구는 더욱 늘어날 것 같다.
최근에는 1인 가구를 위한 반가운 정책들이 들려온다. 집을 살 때 청약 추첨제를 통해 1인 가구 당첨 확률을 높이고, 1인 가구 병원 동행 서비스도 시작한다고 한다. 주거, 질병, 소득에 대한 사회안전망이 있다면 우린 혼자 살아도 괜찮을 것이다. 혼자 살고 싶으면 혼자 살 수 있을 때,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을 때, 역설적으로 2인·3인 가구가 되고 싶어지는 날도 오지 않을까. 새해 소망은 이거다. 혼자서도 잘 살게 해주세요!
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아트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