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카카오톡 대화방도 통신영장… 박범계 “설명 있어야”

입력 2021-12-30 04:02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처장이 29일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공수처를 나서며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다. 공수처가 기자와 야당 정치인, 일반인 등을 상대로 광범위하게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검찰은 이날 김 처장 고발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연합뉴스

언론인·야당 정치인에 대한 저인망식 통신자료 수집 논란으로 고발당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카카오톡을 대상으로 통신영장을 집행한 정황이 나왔다. 통신자료 수집이 광범위하게 이뤄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공수처가 통신영장 발부 대상자가 포함된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 참여자들의 전화번호 일괄 확보가 있었다는 분석이다.

공수처는 수사절차와 관련해 제기된 여러 의문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29일 공수처의 이 같은 태도에 대해 “공수처에서 적절한 설명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검찰은 최근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발된 김진욱 공수처장 수사에 착수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는 수사 중인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통신영장을 법원에서 발부받으면서 카카오톡에 대한 압수수색까지 허가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기관이 범죄 혐의와 관련해 특정 시기를 적어 법원에서 발부받은 통신영장을 제시하면, 카카오톡은 대상자가 참여한 대화방 참여자의 전화번호와 로그기록 등을 수사기관에 제공해야 한다. 공수처는 이를 토대로 통신사에 해당 전화번호의 통신자료 제공을 요청해 이용자의 인적사항을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화 내용은 저장기간이 2~3일에 불과해 제공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공수처는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확인이 어렵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공수처의 무분별한 통신자료 수집 행위가 기본권 침해라는 비판 여론은 거세지고 있다.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사생활의 비밀, 언론의 자유라는 헌법상 권리는 수사의 목적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라며 “현재 드러나는 무차별적인 수집은 헌법적으로 용인되기 어려운, 선을 넘은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 전 처장은 “이번 일로 공수처의 도입 취지나 공신력이 스스로 떨어지고 있다”며 “공수처가 나름의 지침이나 훈령을 만들어 재발 방지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착한 법 만드는 사람들’(상임대표 김현 전 대한변협회장)도 성명을 내고 “통신자료 제공 제도는 영장주의 원칙을 잠탈해 국민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여지가 높아 위헌적”이라며 “국회와 정부는 수사기관의 통신수사 남용을 방지할 제도 개선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공수처는 “적법한 수사 절차를 따른 것” “수사 중인 사안”이라는 입장을 밝힐 뿐 조회 경위와 목적 등에 대해 명쾌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박 장관은 이날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민간인 사찰로 단정하긴 가타부타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영장에 기초한 집행”이라면서도 “오랫동안 언론이나 일각에서 이 문제를 지적하니 적어도 이 부분에 대해선 공수처 쪽에서 적절한 설명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진상 규명은 검찰 손으로 넘어간 상황이다. 수원지검 안양지청은 최근 해당 사건을 배당받아 수사에 착수했다. 한 시민단체가 ‘이성윤 황제조사’를 보도한 TV조선 기자에 대해 통신사실확인 자료를 조회한 의혹과 관련해 김 처장과 ‘성명불상의 공수처 관계자’ 등을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허위공문서 작성 등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한 데 따른 것이다. 이성윤 서울고검장의 공소장 내용을 보도한 중앙일보 기자에 대해 통신영장을 집행한 의혹으로 대검에 고발된 사건도 안양지청에 맡겨질 것으로 보인다.

구승은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