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야당 의원 70% 통신조회… 사찰 의혹 공수처를 수사하라

입력 2021-12-30 04:01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사찰 의혹이 임계점을 넘어섰다. 통신기록을 조회한 것으로 확인된 인원이 하루가 다르게 불어나 250명을 넘었고, 제1야당 국회의원의 70% 이상이 통신조회를 당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부인 김건희씨의 통신자료까지 들여다본 것으로 드러났다. 도저히 뭉개고 넘어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김진욱 공수처장의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지난주 입장문 정도로 해소될 문제가 아니다. 무슨 연유로 이런 일을 벌였는지 명백히 밝혀내고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민의힘은 소속 의원 105명 가운데 최소 78명이 공수처의 통신조회를 당했다고 29일 밝혔다.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최고위원 등 지도부를 포함해 전체의 74%에 해당하는 의원들의 통신자료를 들춰본 것이다. 더욱이 윤 후보의 통신기록을 3차례, 부인 김씨를 1차례 조회했다. 이쯤 되면 야당의 유력 정치인 거의 모두를 사정권에 넣고 통신조회를 벌였다고 봐야 한다. 대체 무슨 수사를 하기에 야당 의원 78명과 대선 후보 가족의 통신자료가 필요했는가.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공수처가 아닌 ‘야수처’(야당 수사처)라는 지적을 스스로 입증하는 꼴이 됐다.

야당 외에도 언론인 130여명과 시민단체·학회 관계자 27명, 그 가족 등 일반 민간인들이 통신조회 대상이 됐다. 대부분 지난 8~10월 무더기로 진행됐고, 대상자들 사이의 관련성이나 특정 범죄와의 연관성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무차별적으로 이뤄졌다. 통신조회는 범죄 혐의와 직접 관련된 사람을 최대한 선별해서 실시해야 한다. 검찰과 경찰에서도 이런 식의 무더기 조회는 매우 이례적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특히 ‘공수처의 이성윤 황제 조사’를 보도한 언론인, 현 정권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온 김경율 회계사 등 정치적 의도가 엿보이는 조회 내역이 많다.

“과거의 수사 관행을 답습했다”는 김 처장 입장문은 이런 의혹에 대한 해명이 될 수 없다. 이것은 수사기관이 부여된 권한을 남용해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 행태다. 많은 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개인정보가 수사기관에 넘어갔음을 뒤늦게 알았다. 더 많은 국민이 나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불안해하게 됐다. 독재정권 시절 불법 사찰의 아픈 기억을 되살려냈다. 강제적인 수사를 통해 진상을 밝혀야 할 사안이다. 공수처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 마침 시민단체가 이를 고발해 검찰에 배당됐으니 신속하고 철저하게 파헤쳐야 할 것이다. 공수처는 이제라도 국민 앞에 경위를 소상히 밝히고 수사에 협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