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이나 지금이나 세상에는 이해되지 않고 정말인가 의아한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요셉이 그러했습니다. 형들은 동생인 요셉을 시기하고 미워했습니다. 웅덩이에 버리기까지 해 놓고도 자기들은 마음 편하게 앉아 먹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상인에게 팔아넘겼을 때 옷에 피를 묻혀서 짐승에게 잡혀 죽었다며 아버지에게 뻔뻔스럽게 거짓말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죽었다는 소리에 오랫동안 애통하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도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험해도 잘 돌봐야 할 동생을 그렇게 하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여기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팔려 갔고, 감옥에 갇혔고, 몇 번이고 죽음의 고비를 넘겼던 요셉에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팔려 간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됐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배운 것도 없고 빈털터리로 고생뿐이었는데 그 막강한 나라에 2인 자가 됐다는 사실이 느껴집니까? 정말 어이가 없고 실감이 안 납니다. 상식적으로 맞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또 보십시오. 기근이 들어 요셉의 형들이 애굽으로 가게 됐습니다. 바로 왕은 소문을 듣고 그들을 기쁨으로 맞았습니다. 모든 양식을 기름진 것으로 먹이고 애굽의 땅까지 주었습니다. 그리고 요즘으로 말하면 최고급 승용차인 수레를 가져다가 아버지를 모셔오게 하고 옷, 은, 수나귀, 암나귀, 곡식, 떡과 양식을 실려 보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실제 그랬습니다. 있을 수 없는 저주에서 있을 수 없는 축복으로 바뀐 것입니다.
지금도 이런 일은 가능합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불가능에서 정반대로 있을 수 없는 축복으로 주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어떻게 가능합니까? 바로 요셉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요셉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분명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더 많이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창 37:3-4)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더 많이 받으면 됩니다. 더 많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부끄러운 가난을 이겨내고 엄청난 축복으로 바뀐 기적의 나라입니다. 지금 나도 그런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사랑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는 것” (롬 8:37)입니다. ‘날 사랑하심~’ 찬송을 합니다.
또 있습니다. 요셉에겐 꿈이 있었습니다. (창 37:5) 끊임없이 꿈을 꾸었습니다. (창 37:9) 언제나 꿈을 가지고 살았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현실이 어떻든 꿈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꿈을 선포해야 합니다. 지금 어렵습니까? 힘이 듭니까? 지칩니까? 이 세상을 살면서 얼마든지 있을 수 없는 억울함이 있습니다. 미움, 시기, 질투와 비난, 가난과 질병, 실패와 같은 온갖 어려움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기적과 축복으로 주님께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겐 꿈이 있습니다.
나를 통해 일하실 주님을 바라봅니다. 있을 수 없는 축복으로 일하실 주님이 우리에겐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버지의 더 큰 사랑을 사모하며 믿음으로 꿈을 간직할 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헌수 꿈너머꿈교회 목사
●이 설교는 장애인을 위해 사회적 기업 ‘샤프에스이’ 소속 지적 장애인 4명이 필자의 원고를 쉽게 고쳐 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