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열조 야곱이 애굽에 온 지 17년이 지난 어느 날 아들들을 불러 유언을 했습니다. 장자 르우벤에게는 기력의 시작이며 위풍이 월등하다고 칭찬했지만, 아비의 침상을 더럽혔다는 사실을 상기시켰습니다. 시므온과 레위에게는 칼은 폭력의 도구로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받을 것이라 쓴소리를 남겼습니다. 유다에게는 형제들의 찬송이 될 것이라 했고 요셉에게는 샘 곁의 무성한 가지처럼 왕성할 것이며 하나님이 도우시고 복 주실 거라 축복했습니다.
이 말을 끝으로 야곱은 147세를 향유하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요셉은 착한 아들이었나 봅니다. 아버지가 죽고 나서 얼마나 슬피 울었는지 모릅니다. 아버지의 몸을 향으로 처리하는 40일은 물론이고 무려 70일간 백성들과 함께 애곡했습니다. 이후 요셉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야곱의 시신을 가족묘인 막벨라 굴에 안장하기 위해 가나안 땅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이르자 요셉은 거기서 또 애통했습니다. 동행한 많은 애굽인과 7일 동안 얼마나 애통했던지 가나안 사람들이 보고 ‘아벨미스라임’이라는 지명을 붙일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슬퍼할 때 걱정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장례식이 막바지로 갈수록 그들의 걱정과 불안은 점점 커졌습니다. 장례식이 끝난 뒤 자칫 큰 위기가 닥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요셉의 형들이었습니다.
장례식이 끝나자 형들은 요셉을 찾아와 “형들의 죄와 허물을 다 용서하라”는 아버지의 특별한 유지를 전했는데 이는 꼼수임이 틀림없습니다. 야곱은 유언을 통해 저주도 했는데 요셉에게만 마냥 다 용서하라고 했다는 건 뭔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형들은 꼼수를 써서라도 살고 싶었을 겁니다. 심지어 그들은 동생 요셉 앞에 납작 엎드려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당신의 종입니다. 당신은 이제 동생이 아니고 주인으로 모시겠습니다.”
요셉이 바보가 아닌 이상 형들의 마음을 어찌 몰랐을까요. 그런데도 순둥이 요셉은 아버지 말이 나오자마자 또 펑펑 울더니 다 용서해 준다고 했습니다. 가만 보니 요셉은 형들을 탓할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다. 도리어 형들의 식구까지 돌봐주고 책임지겠다 약속했고 걱정하지 말라며 위로했습니다.
도대체 요셉은 속이 없어도 유분수지, 착하고 순해도 유분수지, 형들이 저지른 짓을 아버지도 알고 형들도 알고 요셉도 아는데 어떻게 그 큰 실수와 허물을 이렇게 호탕하게 용서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도리어 그들에게 큰 사랑을 베풀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 이유는 본문 20절에 담겨 있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입니다. 당신들의 죄와 악을 하나님이 다 바꿔 주셨습니다. 당신들의 실수와 허물을 하나님이 다 바꿔 주신 겁니다. 당신들은 악한 계획을 세웠지만, 하나님이 그것을 선한 계획으로 바꿔 주셔서 많은 생명을 구원하는 선한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요셉의 믿음이 정말 멋집니다. 그렇습니다. 그의 넉넉한 용서는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의 큰 가슴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원수의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비결은 하나님이 그 모든 상황을 전혀 다르게 선으로 바꿔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묵은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원망과 허물을 함께 보내 버립시다. 요셉처럼 모든 것을 선으로 바꿔 주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면 가능합니다. 그의 놀라운 선언을 보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안성국 목사(익산 평안교회)
◇안성국 목사는 장로회신학대에서 예배설교학(Ph.D.)을 전공하고 익산 평안교회를 담임하며 새로운 설교보급과 예배기획을 비롯해 다양한 집필 사역을 하는 목회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