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방치해 둔 것은 부당한 차별이자 집단 따돌림
사업장 규모 기준으로 노동권 제한하는 입법은
해외에서도 선례 찾기 어려워 개선 시급
전면 적용하거나 입법 확대하고 연착륙 여건 조성에 힘 보태야
노동계는 해결 우선순위 두길
방치해 둔 것은 부당한 차별이자 집단 따돌림
사업장 규모 기준으로 노동권 제한하는 입법은
해외에서도 선례 찾기 어려워 개선 시급
전면 적용하거나 입법 확대하고 연착륙 여건 조성에 힘 보태야
노동계는 해결 우선순위 두길
근로기준법(근기법)은 근로조건의 최저 기준을 정한 법이다. 이 법은 제1조(목적)에서 “헌법에 의하여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함으로써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며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취지를 밝혔다. 사용자에 비해 경제·사회적으로 약자이기 마련인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호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장치가 이 법이라고 할 수 있다.
헌법(제1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고 못 박았으나 근로기준법은 예외다. 1997년 3월 기존 법을 폐기하고 제정할 때부터 적용 대상을 ‘상시 5인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제한했다. 5인 미만 사업장에도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근기법의 일부 규정을 적용할 수 있도록 했지만 ‘5인’을 경계로 노동자의 권리가 현격하게 갈린다.
5인 미만 사업장은 부당 해고 및 전보 구제신청, 근로시간 한도, 연차휴가, 공휴일 및 대체공휴일, 연장·휴일·야간 근무에 따른 가산수당 등 근기법의 여러 핵심 조항들이 적용되지 않는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에 따른 보호도 받을 수 없다. 다음 달 27일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에도 이들은 빠져 있다. 국가가 ‘5인 미만’ 노동자에 대한 차별에 면죄부를 주고, 이들이 차별 받아도 될 존재라는 낙인을 찍은 셈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기준 5인 미만 사업장 수는 121만개로 전체 사업장(184만개)의 65.7%다. 올해 8월에 발표한 자료를 보면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379만5000명으로 전체 임금노동자(2055만9000명)의 18.5%다.
우선해 보호해야 할 노동 약자들을 오랫동안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사업장 여건이나 노동자 개인의 능력에 따라 임금과 후생복지 등에서 차이가 발생하는 거야 뭐라 할 수 없지만 사업장 규모를 기준으로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은 부당하다. 노동자 수를 기준으로 근로조건 적용을 배제한 법은 해외에서 사례를 찾기 어렵다고 하니 노동 후진국이란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8년 모든 사업장에서 근기법 전면 적용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아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하라고 권고했고 국회 입법조사처도 2012년 같은 권고를 한 이유다.
노동계의 거듭된 요구를 받아들여 국회가 뒤늦게 논의에 착수했지만 양상은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관련 법안을 여러 건 발의했지만 근기법 적용을 일부 확대하거나 전면 적용하되 일부 규정을 예외로 남겨두는 내용이다. 그마저도 공무원·교원 노조 타임오프제(근로시간 면제 제도),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등 양대 노총의 주력 노조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의제들의 후순위로 밀려나 있다. 국민의힘은 더 소극적이다. 환노위 간사인 임이자 의원이 최근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은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고 밝혔지만 당은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깔았고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며 발을 빼는 모양새다.
근기법을 5인 미만 사업장에 전면 적용하면 사용자들의 부담이 늘어나는 건 맞다. 최저임금 큰 폭 인상처럼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렇다고 5인 미만을 계속 사각지대에 남겨둘 수는 없다. 5인 미만을 차별하는 것은 가장 취약한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집단 따돌림이다. 약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을 지속하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부작용을 감수하는 게 낫다. 경제 규모 세계 10위의 선진국인데도 시기상조라면 도대체 언제가 돼야 차별을 없앨 수 있단 말인가. 능력이 아니라 의지가 부족한 것이다.
5인 미만 문제 해결은 한국 사회의 심각한 문제인 노동시장 양극화를 완화하는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다. 5인 미만을 배제한 채 노동권을 강화하는 방식은 노동자 간 양극화를 심화시키게 된다. 대체휴일 확대, 주 52시간제 도입 등으로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더 커졌다.
정치권은 5인 미만 전면 적용 원칙과 대략적인 시행 시기라도 합의하고, 연착륙을 할 수 있는 여건 조성에 힘을 보태야 한다. 사용자들의 부담을 덜어줄 제도적 장치와 재정적 지원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노동계도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에 더 우선 순위를 두기 바란다. 자신보다 더 열악한 처지의 시다(미싱 보조원)들을 위해 몸을 불사른 재단사 전태일의 정신이 절실하다. 그래야 해결의 물꼬를 열 수 있다.
라동철 논설위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