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전남 증도에서 교역자 수련회를 했습니다. 이 섬에는 화도라는 작은 섬이 붙어 있습니다. 섬 사이를 연결하는 도로가 있는데 밀물 때는 도로 양편에 바닷물이 출렁거려 마치 바다 위를 달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곳이죠. 이 도로는 폭이 좁아 차량 두 대가 교차하는 게 쉽질 않습니다.
우리가 화도에 들렀다 나올 때였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증도였는데 승합차 한 대와 마주쳤습니다. 기사님은 아슬아슬할 정도로 차를 한쪽으로 붙여 우리가 지나갈 수 있도록 해 줬습니다. 운전석에는 안경을 쓰고 넥타이를 맨 남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며 온 세상이 붉어질 때 낡은 승합차를 몰고 화도로 들어가는 이는 누구일까요.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물었습니다. “혹시 목사님이세요.” 아니나 다를까 그분은 빙그레 웃으며 “그렇다”고 하셨습니다. 바로 화도교회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분이 목사님인 걸 알고 나니 마치 일몰의 찬란한 아름다움이 영혼에까지 스미는 것 같았습니다. 더욱 그렇게 느낀 건 우리는 섬에서 나오고, 그분은 섬으로 들어간다는 ‘엇갈림’ 때문이었습니다. 바다 한복판에서의 엇갈림,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가슴에 차올랐습니다. 바로 이런 분들이 이 땅의 교회와 성도를 지켜온 게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누가 그 노고를 다 알겠습니까. 작은 섬에서 열변을 토해도, 뜨거운 열정으로 목회를 해도 누가 그에 맞는 존경을 드리겠습니까. 어쩌면 신앙에 대한 이해가 없는 지인들이 예수 믿고 목사된 걸 비난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섬마을 목사라는 걸 좌절했을 수도 있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그날도 그분은 승합차를 몰고 섬으로 들어가고 계셨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기꺼이 들어가는 길이었습니다. 아마도 목사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마 25:40)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라고 했던 이사야 선지자의 고백을 눈물로 묵상하는 분은 아닐까요. 그분에게 이 바닷길은 골고다로 가는 비아 돌로로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은 연약한 여성의 몸으로 일제 치하 증도 주변에 수십 개 교회를 개척하고 6·25전쟁 당시 인민군에 의해 순교를 당하신 문준경 전도사님의 후예다웠습니다. 문 전도사님의 영향으로 주민 대부분이 그리스도인이 됐다는, 바로 그 섬을 향해 바다 위로 난 비아 돌로로사 위를 달리는 후계자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목사님께 고통의 길만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천국의 상급을 받으러 가는 영광의 레드 카펫일 것입니다. 그래서 낯선 이들에게 길을 비켜주는 여유와 미소를 가졌을 것입니다.
언젠가 ‘부탁∼해요’라는 대사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양을 부탁하셨습니다. 그 목사님께서는 주님께서 부탁하신 사명을 잘 감당하고 계셨습니다. 2021년이 저뭅니다. 한 해 동안 부탁받은 일을 잘 감당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새해에도 우리 모두 주님께 받은 사명을 잘 감당하고 주어진 길을 묵묵히 달리길 원합니다. 감동은 그런 삶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서울 영락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