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넘버 3의 운명

입력 2021-12-29 04:10

1997년 개봉한 영화 ‘넘버3’에서 주인공 태주(한석규)는 라이벌 조직 넘버2 단칼(배중식)에게 “누가 넘버3래, 내가 넘버2야”라고 소리쳤다. 단칼은 “투나 쓰리나 똑같지, 넘버1이 싹쓸이하는 세상 아니냐”라고 답했다. 영화 속 조폭들은 모두 교도소에 갔다. 도강파 넘버1 도식(안석환), 넘버2 재떨이(박상면), 태주 모두 교소도에 갔고, 수감 중인 태주가 행복한 가정을 상상하며 영화는 끝난다.

단칼의 말과 달리 현실 세계에서 2등과 3등의 차이는 크다. 1, 2위 경쟁이 치열할수록 3등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LG그룹이 올해 스마트폰 사업에서 철수했다. LG 스마트폰은 한때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3~4%까지 차지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삼성전자와 애플에 치이고, 세계 시장에서는 샤오미 등 중국 업체에 밀렸다. 경쟁력을 잃은 3위는 설 자리가 없었다.

한국 정치권의 넘버3들도 결국 넘버1이 되지 못했다. 정주영 현대 회장은 1992년 통일국민당을 창당해 31석을 얻고 대선에 출마했지만, 16.3% 득표에 그쳤다.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는 1997년 15대 대선에서 19.2%를 얻었다. 2002년 대선에서 제3의 후보는 정몽준 후보였는데, 노무현 후보와의 단일화에서 졌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2017년 19대 대선에서 21.4%로 3위를 기록했다.

내년 대선은 비호감 1등과 2등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장이다. 1, 2등 경쟁이 치열할수록 넘버3의 생존은 힘들어진다. 세력 확장에 혈안이 된 넘버1과 넘버2의 인수합병 요구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넘버3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차별화에 성공해야 한다. 애플은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지배하던 휴대폰 시장을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무기로 석권했다. 1, 2위와 다른 영역에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새로운 게임의 룰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넘버3가 넘버1이 된다. 안철수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인수합병 당하지 않고 넘버1이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치 시장과 게임의 룰을 만들어야 한다. 어려운 길이다.

남도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