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MBTI로 사랑하는 방법

입력 2021-12-29 04:08

성격유형검사 MBTI의 유행은 꺼질 줄 모르고 있다. 나는 이에 대해 두 가지 방향의 생각을 하고 있다. MBTI에 대한 관심은 때때로 우리가 타인을 사랑하지 않기 위한 적극적 방식이 된다. 그러나 때로는 섬세한 관심을 기울이는 방식이기도 하다. 우리는 타인에 관한 관심을 종결하기 위해 MBTI를 묻기도 하고, 반대로 타인에게 더 깊이 다가가길 원해서 MBTI를 알고 싶어 하기도 한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지 않을 때 우리는 ‘머릿속’에서 상대를 빠르게 해치워버리려고 한다. 빨리 정리하고 규정해 더이상 생각할 필요 없는 존재로 고정하는 것이다. 그의 실제 행위, 마음, 말, 제스처를 매 순간 다시 바라보는 대신 길에서 지나친 표지판처럼 확정 짓고 더이상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사회생활에 필수적인 기술이기도 하다. 이런 타입, 저런 타입 나누고 분류한 뒤 고민을 끝내는 것이다. MBTI를 묻고서, 아, 내향적이고 직관을 중시하는 사람이군 하고 정리해버린 뒤 더이상 다시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모든 행위와 말은 그런 분류 안에서 반복되는 ‘무의미한 사례’들에 불과하다. 당신은 더 이상 새로운 사례, 내 앞에 주어진 새로운 디테일일 필요가 없다. 그저 어떤 타입으로 고정되고 분류된 존재일 따름이다.

반면 MBTI가 상대에 대한 이해나 사랑과 연관될 때도 있다. 사랑이라는 건 섬세한 관찰을 동반한다. 우리가 어떤 존재를 사랑하겠다는 것은 그 존재를 쉽게 규정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분류하기보다는 그 존재의 작은 디테일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려 애쓰고, 기억하고자 하는 것이 사랑에 가까울 것이다. 당신이 떨어진 낙엽을 바라보는 방식, 숟가락을 쥐는 형태, 인사할 때마다 드러내는 어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가능하면 잘게 쪼개서 바라보고자 하는 게 사랑일 것이다.

그래서 MBTI 유형 가운데 I(내향형)인지 E(외향형)인지 물어보고는, 상대의 일상이나 행위에 점점 더 의미를 부여하며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당신이 독서를 좋아하는 건 I여서가 아닐까? 당신이 여행을 좋아하면서도 홀로 다니기보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건 역시 E이기 때문 아닐까? 그런 ‘질문하기’는 상대에 대한 ‘규정짓기’ 이전에 상대의 디테일에 갖는 ‘관심’이다. 그렇게 타인에게 다가가는 방식으로 MBTI가 활용될 수도 있다.

MBTI의 과학적 근거에 대해서는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적어도 누군가는 그것을 타인에게 다가가기 위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과학인지 아닌지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MBTI이건 혈액형이건 별자리건, 그를 통해 무엇을 하려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타인을 규정짓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 위해 사용하는가 혹은 타인에 대한 디테일 수집가가 되기 위해 사용하는가, 나아가 그런 디테일들을 사랑하고 더 또렷이 기억하기 위해 사용하는가.

나는 타인의 MBTI에 별로 관심이 없는 편이다. 결국 관계에서 중요한 건 상대방이 무슨 유형인지 따위가 아니라고 믿는다. 내가 상대에게 무관심하다면 그가 무슨 알파벳을 가졌는지 알 이유가 무엇이겠으며, 반대로 내가 그에게 진심 어린 관심을 가졌다면 역시 그의 알파벳이 무엇인지도 별반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을 이해하거나 사랑하고 싶을 때 오히려 내가 궁금한 건 당신이 어제 어떤 음악을 들었으며, 지난 주말 어떤 책을 읽었고, 먼 훗날 어디로 여행을 떠나길 원하는지일 것이다. 나는 사랑하는 당신의 그런 디테일을 알고 싶을 따름인 것이다. MBTI가 필요하다면, 그런 디테일에 다가가기 위한 징검다리 정도의 의미에서가 아닐까 싶다.

정지우(문화평론가·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