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실손의료보험 보험료 인상률이 최대 15%대로 잠정 결정될 전망이다. 이대로 인상률이 확정되면 내년에 실손보험 갱신 주기가 도래하는 가입자들은 지난 3~5년치 인상분을 반영한 ‘보험료 폭탄’ 고지서를 받아들 것으로 우려된다. 연령에 따른 보험료 상승분까지 감안해 계산하면 체감 인상률이 30%를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2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손해보험업계는 이날 회의를 열고 내년도 실손보험 보험료 인상률을 8.9~16.0%로 잠정 합의했다. 1세대(구(舊)실손보험)와 2세대(표준화실손보험) 보험료가 평균 15%대 오르고, 3세대(신(新)실손보험)는 8.9% 인상된다. 실손보험료 인상에 영향을 받는 1·2·3세대 실손보험 가입자만 총 3500만여명에 달한다.
이번에 잠정 도출된 실손보험료 인상률은 손보업계가 당초 요구했던 인상률과 비교하면 다소 낮게 책정됐다. 앞서 손보업계는 올해에만 3조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예상되는 실손보험 적자 폭을 고려해 1·2세대 보험료를 각각 25% 가까이 올려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소수 가입자와 일부 의료계의 ‘의료 쇼핑’ 등 도덕적 해이에 대한 책임을 전체 가입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의견을 전달하자 이를 수용했다. 코로나19 상황과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 등도 보험료 인상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손보업계가 한발 물러서며 내년도 실손보험료 인상률이 당초 우려보다는 낮게 책정됐지만, 내년에 갱신 주기가 도래하는 1·2세대 실손보험 가입자들은 적지 않은 부담을 느낄 것으로 예상된다. 갱신 주기가 5년인 초기 가입자들의 경우 2017~2021년 인상률이 내년에 한꺼번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1세당 평균 3% 포인트에 달하는 ‘연령 인상분’까지 더해지면 내년에 실손보험을 갱신하는 이들이 느낄 체감 인상률은 30%를 훌쩍 넘어설 전망이다.
2017년부터 판매되기 시작한 3세대 실손보험의 경우 출시된 지 만 5년이 지나지 않은 탓에 연령 인상분 외 직접적인 보험료 인상은 불가하다. 대신 금융당국은 3세대 실손보험에 적용되던 ‘안정화 할인 특약’을 종료해달라는 손보업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사실상 8.9% 보험료 인상을 용인했다.
손보업계는 악의적인 목적의 ‘나이롱 환자’들이 초래하는 실손보험의 막대한 적자 탓에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보험연구원은 손보사들이 실손보험료를 연평균 13.4%씩 올려도 10년 뒤에는 누적 적자가 100조원에 달할 것으로 관측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손보업계가 실손보험 과다청구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선량한 피해자들에게 떠넘기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실손보험을 부적절하게 이용하는 ‘블랙컨슈머’를 잡아내는 것은 엄연히 보험사의 역할인데, 이것을 전체 가입자들의 보험료를 매년 올리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날 실손보험료 인상률과 관련해 금융당국과 손보업계 간의 협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구체적인 상품별 보험료 인상률 등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막바지 조율을 마친 뒤 이번주 내로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