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선량한 다수 고객에 부담 떠넘긴 실손보험료 폭탄

입력 2021-12-28 04:03 수정 2021-12-28 07:24
내년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 보험료 인상률이 가입 시기에 따라 평균 9~16%로 결정됐다. 당초 보험업계가 20% 인상안을 제시했고 금융당국은 지나치게 높다며 난색을 표명했는데 결국 그 중간 이상에서 결정이 났다. 하지만 3∼5년 주기 보험 갱신 시점을 맞은 가입자의 인상률은 30% 안팎이 될 전망이어서 서민에게는 보험료 폭탄과도 다름없다. 아무리 보험 적자 폭이 크다 하더라도 가입자가 3900만명으로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보험의 보험료 인상이 고객과의 소통이 아닌 당국과 업계 간 절충으로 또다시 이뤄진 것은 유감이다.

27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09년 9월까지 판매된 ‘1세대’ 실손보험과 2017년 3월까지 공급된 ‘2세대’ 표준화 실손보험은 올해보다 15%가량 인상된다. 2017년 4월 이후 판매된 3세대 실손보험 인상률은 8.9%다. 1·2 세대 실손보험 가입자는 2700만명, 3세대 가입자는 80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번 인상 배경은 누적돼 온 실손보험 적자 때문이다. 보험업계는 올해 실손보험 적자가 3조5000억원 안팎이 되고 내년부터 10년간 누적 적자액은 100조원가량 될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실손보험료 적자는 업계의 부주의, 의료계의 이기심, 당국의 방관이 어우러진 정책 실패로 인해 눈덩이처럼 커졌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실손보험 가입자 3496만명 중 2183만명(62.4%)이 보험금을 한 번도 청구하지 않았다. 반면 76만명(2.2%)이 1000만원 넘게 실손보험금을 탔다. 극소수 나일롱 환자 혹은 얌체족에 대한 대처는 의료계의 과잉 진료 방지, 비급여 항목의 보험금 지급 조절 등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런 문제가 제기된 지도 10년가량 됐는데 당국은 팔짱을 꼈고 의료계는 나몰라라 했다.

보험업계의 원죄도 없지 않다. 초기에 실손보험을 의료보험 혜택을 못 받는 비급여 항목 보장용으로 홍보한 게 보험업계다. 1세대 실손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자기부담금도 없도록 했다. 상품을 이렇게 구성해 놨으면서 이제 와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도 꼴사납다. 더욱이 내년 보험료 인상과 관련, 실손보험 재계약 주기를 1년으로 단축해달라는 안도 제시해 빈축을 샀다. 선량한 가입자와 악질 가입자의 보험료를 차등으로 하는 근본 대책을 서두를 때다. 이를 위해 약관을 고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데 문제가 발견된 이상 이를 공론화해 해법을 찾으면 될 일이다. 대다수 선량한 고객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보험료 인상 관행은 멈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