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된 대통령은 대상 아니다”… 후폭풍 거센 특별사면

입력 2021-12-28 04:05
민주노총, 한국진보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27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에 반대하고 있다. 이날 성명에는 세월호 참사 유족 단체를 비롯해 1005개 시민사회단체 등이 이름을 올렸다. 권현구 기자
국민 대화합을 위해 결정됐다는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의 신년 특별사면·복권 여진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문재인정부를 지지해온 이들이 앞장서 ‘촛불 정신’의 훼손이라 비난하는가 하면 사면이 예정된 당사자조차 “고맙지 않고 치욕스럽다”고 밝히는 실정이다.

대통령의 사면권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진 가운데 “‘탄핵된 대통령’의 사면이 과연 가능한 것이냐”하는 논쟁의 불씨도 되살아났다. 권력분립의 원칙에 어긋나고 정치적으로 남용될 여지가 있는 대통령 사면권을 입법적·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제언은 계속되고 있다.

27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헌법학계에서는 애초 헌법재판소에서 파면 결정이 나온 박 전 대통령을 이후 대통령이 사면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어 왔다. 대통령의 사면권이 헌법재판의 결과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며, 형사재판 결과에 대한 사면은 가능하다는 논리가 컸다. 사면을 하더라도 탄핵을 없던 일로 만들진 못한다는 얘기였다.

다만 “탄핵된 것과 동일한 사실관계로 형사재판을 받았다면 해당 판결에 대한 사면도 어렵다”는 적극적 주장도 있었다. 2019년 헌법재판연구원에서 발표된 ‘사면권의 한계에 대한 헌법적 검토’ 보고서가 대표적으로 “‘탄핵된 자’의 사면은 어렵다”는 취지의 주장을 담았다. 사면이 “국회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에 대한 권한을 직간접적으로 형해화(형식만 남고 가치나 의미를 없게 함)한다”는 것이 주장의 근거였다. 박 전 대통령을 예로 든다면, 대법원 결론에 대한 사면 결정이 헌법재판소의 결론까지도 무의미하게 만들어 권력분립 원칙을 훼손한다는 우려였다.

그간 정치권에서 박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 가능성이 언급될 때마다 학계에서는 미국의 사면 제도가 거론됐다. 미국은 탄핵된 이의 사면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헌법 제2조 제2항은 “대통령은 ‘탄핵의 경우를 제외하고’ 형의 집행유예 및 사면을 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고 한다. 이는 미국이 탄핵제도를 예외적이고도 중요한 헌법 보장의 수단으로 여기는 방증이라고, 학계는 해석한다.

이에 비해 한국은 대통령의 사면권에 뚜렷한 요건이나 제한 규정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2007년 사면법 개정으로 법무부 장관 하에 사면심사위원회를 설치한 것이 사실상 권한 남용의 유일한 견제장치다. 하지만 대통령의 마음 속에서 이미 결정이 내려질 뿐, 사면심사위에 별다른 힘이 없다는 시각도 여전하다. 박 전 대통령의 신년 특별사면이 논의된 이번 사면심사위에서는 표결 절차가 없었다고 한다. 회의 5년 이후에야 공개되는 사면심사위원회 회의록은 과거에는 각 위원의 발언 속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으나 현재는 발언 요지만 적혀 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 17일 이전 사면에 대한 대통령 뜻을 전달받았다”고 말한 이날에도 세월호 유가족 등 시민사회 각계의 사면 철회 요구는 계속됐다. 많은 학자들은 대통령 본인이나 가족·측근의 사면 금지, 법무부 외부 심사위원회 설치 등 대통령 사면권의 원칙과 한계를 사면법에 새로 적어 넣을 때라고 말한다. 한 교수는 “국민 화합이나 경제 살리기라는 사면 목적은 결국 힘 있는 정치인과 기업인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교수는 “수업 시간에 사면 제도는 사법 정의를 무너뜨려 문제라고 말한다”고 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