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기 상장 제발 그만…” 모회사 투자개미들 비명

입력 2021-12-28 04:06

핵심 사업부를 빼서 별도 법인으로 만든 후 증시에 상장하는 ‘쪼개기 상장’이 국내 상장사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 같은 물적 분할 후 상장은 외국에서 흔치 않고 대주주에 유리한 측면이 크다. 모회사의 주가 하락도 유발한다. 개인 투자자들은 “삼성전자가 메모리사업부를 자회사로 만든 후 추가 상장하는 꼴”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2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IT기업 NHN은 이날 클라우드 사업 부문을 물적 분할한다는 소식에 9.87% 급락했다. LG화학은 배터리 사업을 분사한 LG에너지솔루션의 상장을 한 달여 앞둔 이날 장중 52주 신저가(62만원)를 기록한 후 62만7000원으로 마감했다. CJ ENM은 지난달 콘텐츠 제작 부문을 물적 분할하겠다는 공시 후 주가가 21.8% 떨어졌다. 해당 사업의 비전을 보고 투자한 자금이 줄줄이 빠져나간 것이다.


기업들은 대규모 투자금을 모으기 위해 분할 상장이 필요하다고 항변한다. 물적 분할 시 기존 법인은 신설 법인의 지분을 모두 취득한다. 기업공개(IPO)로 지분을 일부 매각하면 막대한 자금을 유치할 수 있다.

하지만 투자업계에 따르면 분사 후 상장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곳은 전 세계에서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해외 기업들은 모회사와 자회사 주주 간 이해 상충으로 인한 소송 리스크 등에 민감하다.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이 유튜브를 상장하지 않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자회사가 모회사와 동시 상장되는 사례는 미국에서는 거의 없고 영국은 5%, 일본은 7% 정도 된다”며 “(주주 간) 이해 상충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지적했다.

국내에서 쪼개기 상장이 빈번한 이유는 오너 일가 등 대주주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자회사 지분을 기존 주주와 나눠야 하는 인적 분할에 비해 물적 분할은 대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한다.

기존 소액 주주들은 자회사 주식을 추가로 1주도 받지 못한 채 주가 하락을 감내해야 한다. 모회사의 시가총액에는 자회사 가치가 이미 반영돼있어 분할 상장되면 주가는 떨어지는 구조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상장을 통한 자금 조달 과정에서 모회사 주주가 누리는 이익은 거의 없다. 보상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물적 분할을 추진하는 일부 기업은 이중 상장하지 않겠다며 주주 달래기에 나섰다. 포스코는 핵심인 철강 사업을 물적 분할하는 방안을 발표하며 자회사를 상장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금융당국은 쪼개기 상장을 두고 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