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보리치(35) 칠레 대통령 당선인은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한국 걸그룹 트와이스의 멤버 정연의 포토카드를 들고 찍은 사진을 올렸다. 다른 한 손은 한국인들이 자주 쓰는 ‘손가락 하트’ 모양을 하고 있었다.
현지 언론은 이에 대해 26일(현지시간) 보리치 대통령 당선인이 자국 K팝 팬들이 보여준 지지에 화답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1986년생 밀레니얼 세대로 칠레 역대 최연소 대통령 취임을 앞둔 보리치는 이번 대선에서 주로 젊은 층에서 큰 지지를 받았다. 특히 30대 미만 여성 유권자 그룹에선 보리치가 전국 16개 지역 중 15개에서 승리를 거뒀다고 칠레 일간 라테르세라는 전했다.
CNN 칠레는 젊은 층 내에서도 특히 보리치에 조직적인 지지를 보낸 것이 K팝 팬들이었다고 소개했다. 칠레 K팝 팬들은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등에 방탄소년단(BTS), 마마무 등 K팝 아이돌 사진과 보리치 당선인을 합성한 이미지를 공유하며 선거운동을 펼쳤다.
지난달 1차 투표에서 보리치가 극우 후보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에 밀려 2위를 기록하자 ‘보리치를 지지하는 K팝 팬들’(Kpopers por Boric)이라는 트위터 계정도 생겼다. 칠레 내 19∼37세 K팝 팬 6명이 만든 이 그룹은 트위터에 올린 성명에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파시즘의 부상에 맞서 표를 던지고 단합하기 위해 모든 K팝 팬들을 소환하고 싶다”고 썼다.
한 달이 채 안 되는 기간 이들은 K팝과 보리치를 엮은 1600여개의 게시물을 올리며 당선운동을 펼쳤다.
보리치도 이달 초 K팝 팬들로부터 받은 케이크 등 선물을 개봉하는 틱톡 영상을 올리는 등 그들의 응원에 화답했다. 이 영상을 비롯한 일부 영상에 블랙핑크 등의 노래를 깔기도 했다.
보리치가 K팝 포토카드를 들고 찍은 사진도 K팝 팬들로부터 선물 받은 직후에 찍힌 것으로 추정된다.
CNN 칠레는 “대선을 앞두고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같은 플랫폼이 K팝 팬들이 자신의 후보 취향과 두려움, 의견 등을 표시하는 창이 됐다”고 전했다.
해외 K팝 팬들이 정치·사회적 목소리를 내며 영향력을 과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K팝 팬덤은 지난해 미국의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M) 시위와 올해 콜롬비아 반정부 시위 당시 온라인상에서 시위대에 힘을 실었다. 칠레에서도 2019년 대규모 시위 이후 칠레 내무부가 시위에 영향을 미친 세력 중 하나로 K팝 팬들을 지목하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