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직장인 A씨는 지난 10월 토스뱅크 출범과 동시에 한도 2000만원의 마이너스통장(마통)을 개설했다. 당장 필요한 건 아니었지만 다가올 ‘대출 절벽’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내년부터는 기간별로 은행 대출한도가 제한된다는 소식에 A씨는 다음 주 은행 대출이 재개되자마자 마통 한도를 최대한으로 늘려 받아놓을 생각이다.
금융당국의 강력한 가계대출 규제 정책으로 막혔던 대출길이 내년부터 다시 트인다. 연 단위로 적용되는 총량규제가 오는 31일 끝나고 1월3일부터 리셋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년부터는 더 강화된 월별 총량규제가 시작되는 만큼 한도 소진 전에 미리 대출을 받아 놓으려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패닉대출’ 현상이 재현될 우려가 일고 있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은 대출금리를 낮추고 중단했던 대출 상품 판매를 재개하는 등 대출 정상화에 속속 나서고 있다.
우리은행은 다음 달 3일부터 신용대출 10개 상품과 주택담보대출 4개 상품의 우대금리를 최대 0.6%포인트 인상한다. 사실상의 대출금리 인하 조치다. NH농협은행은 지난 8월 이후 4개월여간 중단했던 ‘NH주택담보대출’ 등 주담대 상품의 판매를 정상화한다. 지난달부터 최대 2000만원까지로 낮췄던 신용대출 한도도 1억원으로 복구한다. SC제일은행도 지난 20일부터 신규 주담대 신청을 받고 있다.
총량규제에 가로막혀 대출 자체를 중단했던 인터넷전문은행도 분주한 분위기다. 카카오뱅크는 지난 10월부터 중단했던 신용대출·마이너스통장 대출을 1월부터 재개할 계획이다. 출범 9일 만에 대출을 중단했던 토스뱅크도 대출 사업을 재개한다.
막혔던 대출길이 열리며 실수요자들은 다소나마 숨통이 트이게 됐다. 문제는 금융당국이 내년부터 도입하기로 한 기간별 총량규제다. 당국은 이제까지 금융회사가 대출 수요자들에게 내줄 수 있는 대출의 총량을 사실상 연 단위로 규제해왔다. 하지만 당국은 내년부터는 특정 기간에 대출수요가 몰리는 일이 없도록 기간별 총량을 다르게 설정하겠다고 밝혔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이 제출한 월별 대출 실행 계획을 바탕으로 협의해 총량을 설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는 은행이 자체 설정한 기간별 한도가 바닥날 것을 우려한 대출 수요자들의 패닉대출 행렬이 나타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올해는 각 은행의 연간 총량한도 내에만 들면 대출을 받을 수 있었지만, 내년부터는 해당 기간에 부여된 총량이 바닥날 때까지 대출을 신청하지 않으면 대출길이 막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직전해 대비 가계대출 증가율도 올해 5~6%대에서 내년엔 4~5%대로 줄어든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올해보다 가계대출 총량규제가 강화될 것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진 만큼 대출 수요자들이 연초부터 대출 한도를 확보하려 들 유인은 충분하다”며 “기간별 총량규제를 실시하면 특정 기간에 대출이 극단적으로 쏠리는 것은 막을 수 있겠지만, 대출절벽 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