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에서 11월까지 전국 평균 기온은 14.4도로 집계됐다. 전국적 기상 관측을 시작한 1973년 이래 가장 높은 온도라고 한다. 아직 12월 한 달 기록이 남았으나, 성탄절 전후 반짝 한파 외엔 대체로 포근했던 터라 올해 평균 기온이 역대 1위가 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세계에서 가장 추운 도시의 최고 기온도 새로 쓰여졌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최근 러시아 베르호얀스크 상공에서 기록된 영상 38도(지난해 6월 20일 측정)를 북극권 사상 최고 기록으로 공식 인정했다. 이곳 기상 관측소가 1885년부터 운영됐으니 135년 만의 기록인 셈이다. 시베리아 6월 평균 기온이 20도 정도이고 따뜻한 기후의 대명사인 지중해 그리스의 6월 평균 기온이 38도인 점을 생각하면 시베리아에서 기록된 새 온도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추운 곳만인가. 미국 캘리포니아 데스 밸리의 기온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54도로 측정됐고,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의 기온도 사상 최고인 48도를 찍었다. WMO는 이들 지역 기록도 검증하기 위한 조사에 들어갔다. “동시에 이렇게 많은 지역을 조사하는 것은 처음”이라는 WMO 사무총장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기온 변화는 단순히 숫자 기록으로 끝나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올해 기후 이슈는 끊이지 않았다. 지난 2월 인도 히말라야 고산지대가 따뜻한 날씨로 인한 갑작스러운 홍수에 피해를 입은 게 시작이었다. 비슷한 시기 뜨거운 날씨가 자연스러운 미국 텍사스에 북극발 한파가 몰아쳤고, 이는 전력 부족 사태로 이어졌다. 여름엔 세계 곳곳이 폭염에 휩싸였다. 캐나다에서는 폭염으로 700명 넘는 사람이 사망했고, 미국 캘리포니아 등에선 최악 규모의 산불이 잇따랐다. 뜨거운 날씨가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자연 발화’의 무서움을 깨달은 여름이었다. 폭염과 함께 폭우도 잦았다. 정돈된 마을 이미지가 또렷한 독일 곳곳이 물에 잠겨 피해를 호소하는 장면이 주는 충격은 컸다. 최근에도 미국 중부를 강타한 최악의 토네이도에 90여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그런데 ‘사상 처음’ ‘전대미문’도 반복되면 어느새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 돼버릴 수 있다.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전 지구적으로 중요하다지만, 너무 거대한 일인 데다 당장 내 옆에서 벌어지기 전까지는 먼 나라 얘기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올해 영국 글래스고에 모인 전 세계 정상들이 기후 협약을 맺으며 저마다 ‘기후 행동’을 촉구하는 모습이 무겁고 진지했는데도 이상하게 현실감이 없었던 건 그 때문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오랜 세월 성장과 편리함이라는 가치, 이른바 실용성과 경제성을 추구해온 우리들 안에 환경을 지키자는 건 여전히 ‘당연하고 아름다운’ 얘기 정도로 치부하는 태도가 있다. 당장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데 쓰임이 있는 일이 아닌 ‘무용한 것’을 추구하는 건 순진하거나 배부른 소리라는 인식이 여전해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코로나19에서 벗어나지 못해 사회를 잃고 각자 고립된 사람들에게 휴식처가 돼 준 것은 자연이었다. 사람들은 모임을 못하는 대신 자연을 찾아 나섰다. 어려운 시대에 놓인 사람들이 ‘무용한 것’을 찾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유용하다는 건 각자 놓인 상황에 따라 이익과 쓸모가 다르기에 다툼의 대상이 되기 쉬운 반면 무용한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답기에 함께 누릴 수 있는 대상이다. 무엇보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가치를 가진 존재가 무너질 때 미치는 영향은 모두에게 막대할 수밖에 없다. 올해 경험한 숱한 재해는 그런 무용한 존재가 보내는 경고이자 반격이다. 새해엔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의 회복을 추구할 수 있길 바란다.
조민영 온라인뉴스부 차장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