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혜 특파원의 여기는 베이징] 독일마저 中에 등 돌리나… 새 연립정부 ‘강경 대중정책’ 예고

입력 2021-12-27 04:05

중국 외교가에선 요즘 독일의 대중 정책이 화제다. 신호탄이 된 건 올라프 숄츠 신임 독일 총리의 사회민주당이 지난달 말 녹색당, 자유민주당과 이른바 ‘신호등 연립정부’를 구성하면서 사인한 연정 합의문이다. 합의문에는 중국을 자극하는 내용이 가득하다.

총 177페이지로 된 연정 합의문에서 중국은 12번 등장한다. 홍콩에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를 다시 활성화하고, 대만의 국제기구 가입을 지지하며, 대만해협의 일방적 상황 변경에 반대한다는 내용이다. 모두 중국이 핵심이익으로 여겨 다른 나라가 거론만 해도 내정간섭이라고 반발하는 사안이다.

연정 3당은 특히 미국과의 관계를 ‘새롭고 역동적’이라고 설정한 반면 중국에 대해선 ‘동반자, 경쟁, 그리고 체제적 경쟁자’(systemic rival)라고 평가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더디플로맷은 “독일 연정 합의문에 중국이 체제적 경쟁자로 언급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가 퇴진한 독일은 이제 중국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실행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한 소식통은 26일 “지난달 말 연정 합의문이 발표된 뒤로 중국에 있는 독일 기업들은 양국 관계가 어떻게 흘러갈지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진핑·숄츠 첫 통화는 무난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숄츠 총리의 지난 21일 첫 전화 통화는 비교적 원만하게 끝났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시 주석은 내년 수교 50주년이 되는 중·독 관계 발전과 실용적 태도 견지, 국제사회 기여를 위한 협력을 강조했다. 시 주석은 또 미국을 겨냥한 듯 “중·독은 다자주의를 지지하는 나라로 다양한 형태의 패권 행위와 냉전 사고에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독일 측 발표는 짤막했다. 독일 정부는 두 정상이 ‘양국 협력 및 경제 관계 심화, 유럽연합(EU)과 중국 관계 발전, 국제적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며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양측 발표에서 중국의 인권 문제나 친중 인사들이 싹쓸이한 홍콩 입법회(선거) 선거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첫 통화였던 만큼 서로 민감한 현안은 피해간 것으로 보인다.

독일 정부 발표에는 없지만 중국 외교부는 “숄츠 총리가 중·EU 투자협정이 조속히 비준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는 연정 합의문과는 배치되는 내용이다. 합의문은 ‘메르켈 전 총리의 지시로 추진된 중국과의 투자협정은 현 단계에서 비준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중국과 EU는 지난해 말 포괄적투자협정(CAI) 체결에 합의했지만 협정 비준 권한이 있는 유럽의회가 중국의 인권, 노동 상황을 문제 삼아 제동을 걸었다. 협정이 발효되려면 EU 입법부인 유럽의회 비준과 EU 27개 회원국 수장이 모인 평의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

독일 신임 외무장관도 대중 강경파


녹색당 총리 후보였던 안날레나 배어복 독일 신임 외무장관이 실용 대신 ‘가치 외교’를 내건 점도 대중 정책의 변화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배어복 장관은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중국과 러시아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에 더욱 강경한 노선을 취하겠다고 예고했다. 또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 보이콧 동참을 배제하지 않았고 신장 제품에 대한 수입 금지도 제안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3일 신장산 제품 수입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위구르족 강제노동 금지법’에 서명한 것을 두고 독일 정부 내에서도 관련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 배어복 장관은 소신이 강하고 까칠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바이든 미 행정부는 그간 유럽이 대중 견제 노선에 동참할 것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EU의 중요한 축인 독일은 메르켈 전 총리 재임 기간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중국에 우호적인 정책을 펼쳤다. 중국 지도부는 메르켈 전 총리가 퇴임할 때 그를 ‘오랜 친구’라고 칭하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러나 독일 연정 3당의 전반적인 반중 기조와 외무장관의 스타일을 감안하면 독일 새 정부는 미국 쪽에 밀착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독일 정부가 내건 가치 외교가 어느 정도로 구체화될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중국의 인권 문제를 비판하는 선에 머물지, 호주처럼 중국과의 경제적 마찰을 감수하고서라도 실제적 조치를 취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중국은 호주와 리투아니아 등 미국 편에 서서 중국에 맞서는 나라들에 그에 상응하는 보복 조치를 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은 독일로선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중국은 독일의 최대 교역 파트너다.

메르켈 전 총리 시절 재무장관을 지낸 숄츠 총리는 실용적인 인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숄츠 총리와 배어복 장관이 대중 정책을 놓고 이견을 보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두 사람간 주도권 다툼을 예상하는 시각도 있지만 이제 막 취임한 숄츠 총리가 의사 결정 과정에서 존재감을 보일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

[권지혜 특파원의 여기는 베이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