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우주망원경

입력 2021-12-27 04:10

1972년 아폴로 17호 우주비행사들은 달을 향해 날아가다 잠시 고개를 돌려 70㎜ 핫셀블라드 카메라로 지구를 촬영했다. 이륙 5시간 만에, 4만5000㎞ 떨어진 곳에서 지구를 통째로 렌즈에 담을 수 있었다. 푸른 바다와 붉은 사막, 인도양의 사이클론이 어우러진 이 사진에 나사는 ‘블루 마블(푸른 구슬)’이란 이름을 붙였다. 구슬처럼 신비로운데 자칫 깨질 듯 연약해 보여서 사람들에게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블루 마블은 환경운동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됐다.

달에 갔던 우주비행사들은 가치관의 변화를 경험했다고들 말한다. 광활한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는 티끌처럼 미약한 존재이면서 어둠 속에 홀로 푸른 경이로운 곳이기도 하다. 저런 데서 왜 그리 아등바등했을까, 아웅다웅했을까 싶은 본질적 의문과 마주하게 되는데, 이를 조망 효과(overview effect)라고 한다. 얼마 전 로켓을 타고 우주 문턱까지 올라가 지구를 내려다봤던 제프 베이조스도 “연약한 지구에 감사한다”는 말로 이 효과를 드러냈다.

우주 공간의 이미지는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졌다. 1995년 허블우주망원경이 촬영한 사진도 그랬다. 세계 천문학자들이 허블을 써보려 경쟁하던 당시, 운영책임자 밥 윌리엄스는 엉뚱하게 큰곰자리의 깜깜한 곳을 그냥 찍어보자고 했다. 동료들이 거긴 아무것도 없다고 반대했지만, 고집을 부려 열흘 동안 렌즈를 맞춰놨더니 3000개나 되는 은하가 보석처럼 박힌 놀라운 사진이 찍혀 있었다. ‘허블 딥 필드’라고 불리는 이 이미지는 과학자들의 생각을 뒤흔들었다. 우주는 우리가 알던 것보다 훨씬 넓고 훨씬 오래된 거였다. 그 속에서 지구와 인간의 존재는 더욱 미미해졌고,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찰나보다 짧아졌으며, 그 시간을 함께하는 이들을 더 소중하게 생각할 기회가 됐다.

허블보다 100배 뛰어난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이 발사됐다. 적외선 탐지로 더 오래된 빛, 더 먼 빛을 볼 수 있다. 뭐가 보일지 몰라서 더 기대되는 망원경이 또 어떤 사진으로 우리 마음을 건드릴지 궁금하다.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