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평가는 끝마무리를 보면 알 수 있다. 처음보다 끝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2년 전에 35년 목회하던 교회를 은퇴하고 제주도에서 생활하고 있는 서울 양천구 목동에 있는 방주교회 임흥수(72) 원로목사를 제주도에서 만났다. 임 목사는 은퇴 후 후임 황준철 목사가 혹이나 부담이 될까봐 소신 있게 목회할 수 있도록 제주도에 내려와 살면서 가까운 북촌교회에 나가고 있다. 2년 동안은 35년의 목회를 돌아보며 속죄하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으며 한 번도 서울에 있는 본 교회에 가지 않았다고 했다. 기관지가 나빠서 제주도에 내려왔는데 목회하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성도들을 위해서 세세하게 기도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는 마음으로 매일 매일 전 성도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불러가며 기도하고 있었다. 또한 "남은 생애 나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이 있나 생각하며 회개하는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제주도에서 임 목사를 만난 것은 7년 전 노회에 속한 한 교회가 문제가 생겨 경매에 넘어갈 상황에 있었지만 임 목사가 나서서 해결하여 아름답게 부흥하고 있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당시 교회를 위해 임 목사는 교회가 모아둔 은퇴비까지 과감히 들여가며 정상으로 회복시키는데 헌신했다. 현재 교회는 은혜롭고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 경기도 파주에 있는 운정 방주교회가 바로 그 교회이다(11월17일자 국민일보 미션업코리아 보도).
당시 상황을 임 목사는 “교회는 35억 원의 빚이 있었고 전쟁설과 북한 땅굴 남침설 등의 예언에 현혹되어 담임목사와 성도들 32명이 필리핀으로 이주한 상태였다. 그야말로 목자 없는 양 같은 성도들 15명만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교회는 아름답게 건축되어 있었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경매로 넘어가 다른 건물이 들어설 상황이었다. 이렇게 되면 성도들이 드린 헌금으로 세워진 교회 하나가 문을 닫고 사라지게 될 상황 이었다”고 했다. 이때 임 목사는 노회에 “당회장 권한을 나에게 달라. 내가 수습해 보겠다”고 제안해서 당회장 권한을 가지고 목동 방주교회 당회원들과 상의하며 본격적으로 교회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가장 시급한 문제가 성도들 11명의 집을 담보로 빌린 7.2% 이자의 사금융 대출이었다. 임 목사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더니 당시 부사장이 나왔는데 경매로 넘어가면 양쪽 다 손해 보니 이자는 목동 방주교회가 책임질 테니 이자를 낮춰달라고 했는데 5.1%로 낮춰줬다. 그리고 놀랍게도 11명의 성도들 집의 근저당 설정을 모두 풀어주었다”고 했다.
당시 교회는 담임목사 은퇴를 위해 퇴직금을 저축해놓았는데 교회는 담임목사가 어떻게 사용하든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은퇴비를 포함하여 일부 부속 건물을 담보로 대출 받아 13억을 갚았다. 그리고 2년 동안 교회에서 500만원과 임 목사 목회비에서 500만원을 합해 1000만원 씩 이자를 감당해주기로 했다. 이어서 부목사로 14년 있다가 다른 지역 상가에서 목회하고 있던 윤효중 목사를 담임목사로 청빙하여 세웠다. 윤효중 목사는 부임하여 교회이름을 방주교회 이름을 따서 운정 방주교회로 정했다. 윤 목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2015년 1월, 매서운 추위와 함께 찾은 교회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보일러가 터져 물이 새어있는 자리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그 순간 저와 제 아내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 찬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엉엉 울며 목이 터져라 기도할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서는 하나님께 물었다. ‘주님, 어떻게 살리실 건가요? 주님! 어떻게 살릴까요?’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기도는 그 것 뿐이었다. 부임 전후로 주변에서는 좋지 않은 소문이 계속되고, 심지어 동료 목사님들로부터 망한 교회에서 얼른 도망가라는 이야기까지 들렸다. 그 당시 하루 이자만 65만원이었던 교회 본당에 홀로 앉아 하나님 앞에 서원했다. ‘나는 이곳에 죽으러 왔습니다. 이곳에서 뼈를 묻게 하옵소서’ 그렇게 기도드린 후에 교회에 남은 15명의 성도들을 만났다. 그들은 단순히 교회에 남은사람들이 아닌, 교회를 지켜온 성도였기에 저는 그들의 이름과 얼굴 하나하나를 저의 뼛속에 새겼다. 그들은 여전히 주인 행세가 아닌 주인의식을 가지고 교회를 건강하게 섬기고 있다. 하나님께서 불어넣으시는 생기를 통해 살아난 교회가 되었고, 이제 생명을 살리며, 다음세대를 세우는 교회로 성장하고 있다”
윤효중 목사의 말처럼 운정 방주교회는 7년 만에 완전히 정상으로 회복되고 살아난 교회가 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목동 방주교회 당시 임흥수 목사와 성도들의 헌신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한 당시 사고 교회로 낙인찍혀 있던 교회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지키며 자신의 사업이 위태로울 정도로 어려움을 견디며 섬겨온 두 명의 장로를 포함한 15명의 성도들이 있었다.
임 목사는 7년 전 일을 회상하며 “윤효중 목사님 사모님이 정말 훌륭하다. 목사님이 2년 동안 생활비를 가져다주지 못해도 내색하지 않고 교회를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또한 조해권 장로님과 김남재 장로님 두 분이 대단한 분들이다. 두 분은 교회를 끝까지 지켜 오늘날 든든하고 건강한 교회로 세우는 일에 앞장선 분들이다”고 했다.
원래 목동 방주교회는 임 목사가 부임하기 10년 전 1976년 2월 강서구 화곡동에서 ‘대방동의 기둥이 되자’는 의미로 시작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개척한 목사는 미국선교사로 떠나고 임 목사가 39살 되던 해 부임하게 되었다. 당시 2층 55평에 37명이 출석하고 있었다. 방주교회에 임 목사가 부임하기 전에는 환일고등학교 음악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교회에 온지 7년 된 때에는 세례교인 1000여명 출석으로 부흥되었다. 이때 예배당을 짓기 위해 가지고 있는 집과 퇴직하면서 받은 퇴직금까지 드려서 150평 대지에 예배당을 건축했다. 그러나 갈려고 보니까 인원이 다 수용할 수 없었고, 주민들 30여명이 모여서 반대하는 바람에 이사를 가지 못했다. 이후 당시 지인 소개로 지금의 교회 부지를 소개받고 구입했지만 세입자들이 비워주지 않아서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다 결국 10년이 되어 부채도 모두 갚고 봉헌을 했다.
임 목사에게 원로목사로서 후배 목회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더니 “은퇴해보니까 하나님께 다 부끄러운 것만 생각났다. 더 잘하고 열심히 할 걸 하며, 아쉽고 하나님께 죄송한 생각만 든다. 후배 목회자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은 ‘다 지나간다’이다. 집착하지 말라. 슬픈 일, 기쁜 일, 서운한 일, 두려운 일 등 다 지나간다. 결과는 반드시 하나님이 선하게 이루어주신다. 그리고 말씀을 지식으로 간직하지 말고 생활화하라. 말씀으로 삶을 살아라. 일만 마디 말보다 깨달은 말씀으로 살아라”고 당부했다.
임 목사 옆에서 14년 동안 부목사로 동역했던 운정 방주교회 윤효중 목사는 “임 목사님은 나에게는 스승과 아버지 같은 분이시다. 늘 다독거려주시고 모든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맡겨주시는 분이셨다. 부목사로 있을 때에 목사님께 칭찬을 들어본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교회를 떠나올 때에 목사님께서 제게 ‘이제 어디로 가든지 든든하다. 그동안 내가 칭찬 많이 안 했지. 칭찬하면 교만할까봐 칭찬을 아꼈다. 이제 어디로 가더라도 목회를 잘 할 것 같아 마음이 든든하다’고 하셨다. 목사님은 늘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셨다. 지하 예배실 옆에서 늘 주무시면서 말씀과 기도에 힘쓰시고 교회를 돌보시곤 하셨다”고 했다.
정연수 장로는 임 목사에 대해 “목사님을 33년 모셨다. 목사님은 신실하시고 원칙을 벗어나 편법을 쓰지 않으시고 정도를 걸어가시는 분이시다. 운정 방주교회도 목사님의 결단과 헌신 그리고 수고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세워질 수 없었을 것이다”고 했다.
임 목사는 교회를 떠나오면서 후임 황준철 목사에게 특별한 부탁을 하지 않고 교회 표어 ‘세계를 선교지로 인류를 그리스도의 품안으로’를 잘 지켜달라고만 부탁 했다고 한다.
후임으로 온 황준철 목사는 임 목사에 대해 “목사님은 신앙의 지조를 목숨같이 여기는 분이시다.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하신 분이시다. 교회를 건축할 때에도 운정 방주교회 문제를 해결할 때에도 스스로 앞장서서 헌신하셨다. 목사님은 제가 부담 갖지 않고 마음껏 목회할 수 있도록 일절 부탁이나 지시하거나 한 적이 없으시다. 또한 사모님은 어머님같이 따뜻하시고 너무도 저희 부부를 사랑으로 대해주신다. 그리고 종종 전화로 기도제목을 몇 십분씩 나눌 정도로 행복하다”고 했다.
임 목사의 가족은 백명심 사모와 아들 둘과 딸 하나가 있다. 큰 아들은 키르키즈스탄 선교사로 가있고, 둘째 아들은 미국 벧엘교회 교회영상 전문가로 있다가 한국에 와서 지진설계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또한 딸은 제주도 열방대학 간사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