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가장 좋은 교육일까”… 학교와 주민 토론으로 합의

입력 2021-12-27 04:03
대전의 직업계고인 계룡디지텍고교 학생들이 ‘그린스마트미래학교 사전기획’에 참여해 학교 도면을 그리고 있다. 계룡디지텍고 제공

그린스마트미래학교 사업이 예전 교육환경 개선 사업과 차별화되는 점은 ‘사전기획’에 있다. 사전기획은 학생과 교사, 학부모 등 학교 구성원과 지역주민의 의견 수렴 과정으로 정의할 수 있다. 교장·교감을 포함한 일부 힘 있는 교사와 시설 담당자 몇 명이 학교 공간을 결정해 오던 과거 방식에서 탈피해 의견 수렴 대상이 확대됐다.

더디고 시끄럽고 귀찮은 작업을 꼭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현재 대부분의 학교 모습인 네모반듯한 학교 공간은 매년 100만명씩 아이들이 태어나던 산업화시기와 닮아 있다. 대량으로 표준화된 인재를 키워내던 당시와 한 해 30만명도 태어나지 않는 현재의 방식이 같을 수는 없다. 국력도 당시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졌다. 지역과 학교, 학생에 따라 맞춤형 교육의 필요성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말이다.

사전기획은 이런 맞춤형 교육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가르칠지 합의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공간을 마련해 가는 작업이다. 단 과정은 험난하다. 교사들이 갈등을 빚기도 하고, 학교와 학부모가 대립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벽을 넘으면 학생, 학부모, 교사의 생각이 한데 모아진 미래 학교 비전을 단단하게 도출할 수 있다. 이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 중인 것으로 평가되는 대전의 계룡디지텍고교를 최근 다녀왔다.

파워게임…회의 또 회의

계룡디지텍고가 그린스마트미래학교 사업에 선정된 건 지난 4월 말이었다. 단순히 오래된 학교를 리모델링해주는 사업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교사들은 처음엔 전혀 다른 사업 방식에 당황했다고 한다. 사업은 학교 구성원뿐 아니라 지역주민의 합의 과정을 담은 사전기획 단계를 요구했다.

사전기획은 학교 교육과정에 정통한 교사와 교육청에서 배정해준 건축가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교사가 학교 구성원들의 의견을 취합해 건축가에게 전달하면 건축가는 건축의 관점에서 피드백을 한다. 건축가가 직접 학교 구성원들의 의견을 듣기도 하는데 이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중간보고서와 최종보고서를 작성한다.

계룡디지텍고에서 사전기획을 담당한 송근학 교사는 “쉬운 일이 아니다”고 말문을 열었다. 직업계고인 점도 작업의 난도를 높였다고 한다. 일단 고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취업 전선에 나가려는 학생과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둔 학생이 갈렸다. 전공별 얽힌 이해관계도 간단치 않았다. “내 제자 실습실은 양보 못한다”는 반발이 나왔다. 공간은 학내 지분이며 힘을 의미해 공간 구성 자체가 ‘파워게임’으로 흐르기 쉬웠다.

송 교사는 “사업을 포기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등 위기감이 커진 후 학교와 학생들의 미래를 놓고 이참에 과도할 정도로 많은 얘기를 나눠보자는 합의가 이뤄졌다”고 떠올렸다. 교사들은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매주 두 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매주 월요일 1교시와 금요일 7교시를 회의 시간으로 정했다.

밑바닥부터 하나씩 토론했다. 먼저 학교의 현실과 학생의 특성을 분석했다. 그리고 학생들이 졸업했을 때 마주할 사회 변화를 논의했다. 자연스럽게 학생에게 가장 좋은 교육은 무엇인가에 대한 토론으로 이어졌다. 학생, 학부모의 목소리가 담겨야 토론이 생산적일 수 있었다. 학생, 학부모, 지역주민에게도 끊임없이 의견을 구했고 이 과정에서 공간 구성이 잘된 학교를 섭외해 방문하는 ‘인사이트 투어’를 진행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하나둘 미래에 대한 밑그림이 그려질 수 있었다.

4개의 키워드와 4개의 공간


학생들이 원하는 공간은 자유로운 학습·휴식 공간, 전공 관련 학습공간, 접근성 높은 컴퓨터실, 운동 공간 등으로 요약됐다( 참조). 학부모들은 학부모참여 프로그램이 가능한 공간과 진로 정보를 탐색할 수 있는 공간을 추가했다. 교사들은 전공동아리실과 교사 연구실 및 자연친화적인 휴식 공간 등을 원했고, 지역주민들은 단순한 운동장이 아닌 문화생활이 가능한 운동장을 원했다. 또 스마트기기를 배울 수 있는 공간에 대한 바람도 나타냈다.

다양한 요구는 사전기획 단계를 거치며 4개의 키워드와 4개의 공간으로 압축됐다. 키워드는 다양성·역동성·창의성·어울림이다. 이를 구현하기 위한 공간 구성은 생활공간·수업공간·진로공간·복합공간으로 정리됐다. 생활공간은 학생다목적·자연친화·학생위생, 수업공간은 정보통신·스마트소프트웨어·전자·스마트제어 등, 진로공간은 취업지원·진로진학·진로체험 공간으로 꾸미기로 했다. 마지막 복합공간에는 문화예술, 창의중심 융합, 지역사회 참여 공간이 들어선다.

사전기획이 마무리됐고 현재는 설계 단계로 접어들었다. 송 교사는 “실제 건축하고 났을 때 얼마나 좋아질지 의구심이 들긴 하다. 예산과 비례하는 측면이 있으니까”라면서도 “(그린스마트미래학교 첫해 학교여서) 힘들었지만 사전기획을 좀 더 체계적인 프로세스를 갖춰서 너무 급하지 않게 진행한다면 그 과정 자체가 학교에 굉장히 의미 있는 작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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