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

입력 2021-12-27 03:05

오늘 본문의 말씀은 시몬 베드로부터 ‘예수를 판 자더라’하는 가룟 유다까지 이 구절들 앞에 부른 이들이 어떤 자이며 왜 부르셨는지를 밝히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은 코로나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 세상의 모든 교회가 그 정체성을 다시금 정립해 볼 수 있는 구절이라 생각됩니다.

먼저 13절입니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교회는 예수님이 부르신 자들의 모임입니다. 보다 정확히는 예수님이 선택해 부르셔서 그분을 따르는 자들의 모임인 것이죠.

마가복음 1장 16절부터 20절까지 보시면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시다가 시몬과 형제 안드레,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만나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신 뒤 예수를 “따르니라”고 그들의 상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장에서 반복하는 단어가 바로 이 ‘따르다’라는 단어인데요.

유진 피터슨이 아들 에릭 피터슨에게 보낸 37편의 편지를 엮어 만든 책 ‘젊은 목사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면 이 부분에 대해서 아주 만족스럽게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끌라(리더십)는 말씀 대신 따르라(팔로워십)는 초대장을 주신다. 팔로워십이 리더십보다 앞서고 보다 포괄적이다.”

교회는 리더십을 배우고 익혀서 세상의 리더가 되기 위해 모이는 곳이 아니라 ‘예수님 따르기 위해서 모이는 곳’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라는 걸 무엇을 통해 증명할 수 있을까요. 그다음 14절입니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이 말씀이 예수님 ‘나를 따르라’하신 목적입니다. 무얼 전하느냐면 예수님을 전하는 겁니다. 전도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에는 무슨 거창한 내용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1장을 보면 예수님이 빌립을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그 빌립이 예수님을 따르고 몇 년을 배웠지만 익힌 게 없습니다. 내가 만난 예수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예수를 만났는지 단 한 마디면 됩니다. 그게 전도입니다.

그런데 이 전도가 되려면, 뭐가 선행돼야 합니까? 예수님 따르려고 교회에 나와야 됩니다.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나를 따르라’하신 그 음성에 이끌려 예수님을 따르려고 나오셔야 합니다.

15절입니다.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마가복음 6장을 보시면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고 병 고치는 능력을 주셔서 파송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산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이라고 봐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병들고 아프고 죽어 나가는 현장, 그러면서도 도움도 받지 못하고 손가락질받고 부정하다며 눈총받는 사람들만 가득한 현장, 오랜 세월 별의별 방법을 다 써도 자신들 힘으로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는 광야와 같은 곳에서 사역을 하셨습니다.

지금 제자들이 귀신을 내쫓고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은 건 너희들이 살아갈 장소가 내가 살아냈던 광야와 같은 그런 곳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려 함을 알아야 합니다.

큰 사람이 되고 리더가 되도록 노력하며 전화위복의 삶이 우리를 기다린다는 비전이 교회와 신앙생활의 전부가 아닙니다. 어떤 아픔과 두려움, 고통 속에도 변함없이 예수님을 따르는 자로 서 있게 하는 곳, 그곳이 교회입니다.

김진혁 목사(아산 뿌리교회)

◇기독교한국침례회 소속 충남 아산 뿌리교회는 김진혁 목사가 2016년 설립했습니다. ‘사람 내 나는 동네 교회’라는 표어 아래 삶을 통한 복음의 확장이 교회가 있는 동네에서 시작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