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세무사 자격시험에서 감면특례 합격자 급증으로 수험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경력직 세무공무원들이 당연 면제받는 과목의 난이도 조정 실패에 수험생들이 집단소송을 추진하고 있다. 시험 주관 기관인 한국산업인력공단은 인위적으로 특정 집단에 유리하도록 시험을 조정할 수 없는 구조라고 하고, 국세청은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며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결국 고용노동부가 공단에 대한 특정감사에 들어갔지만, 이번 세무사 시험 담당 실무 책임자는 정년퇴직을 앞두고 휴가 중이라는 소식이다.
이번 사건의 실상은 이랬다. 세무 관련 공무원 경력 10년 이상은 1차 시험 면제, 20년 이상은 2차 시험 4과목(회계학1·2부, 세법학1·2부) 중 세법학 2과목이 면제된다. 그중 세법학1부 과목 응시자의 82.1%가 과락으로 탈락했다(최근 5년 평균 과락률 38%). 2차 시험의 총 응시자는 4597명이고, 탈락자 3891명 중 세법학1부 과락이 3200여명이었다. 감면특례 세무공무원은 2차 합격자 706명의 33.6%인 237명이다(최근 5년 평균은 7.5% 50명). 감면특례자의 대부분이 국세청 출신이고, 특히 이번 시험은 ‘경력직 자동취득’에서 ‘시험 감면’ 제도로 개정된 2000년 이후 정확히 ‘20년 경력’ 요건이 채워지는 시점이라서 더욱 의혹을 산다.
적어도 이 의혹이 사실이라면 그건 범죄행위다. 전관예우적 자격시험 감면은 인생을 담보한 수험생 사이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논쟁거리다. 세무사뿐 아니라 다른 자격사들도 이런 우려는 있어왔다. 현재 경력직 공무원에게 시험과목 감면제를 유지하는 것으로는 세무사 외에도 변리사, 법무사, 관세사, 공인노무사, 공인회계사, 감정평가사 등이 있다. 이 같은 전관예우적 감면은 세칭 ‘고급’ 전문자격사에 집중돼 있고 그 폐지 시도는 매번 실패했다. 게다가 최근까지도 과목별 시험위원 ‘마피아’ 소문이 암암리에 돌았다.
시험 난이도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진입장벽의 문제다. 채점의 엄격성을 통한 진입장벽 사례가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0.1점으로 당락이 갈리는 세칭 고급 자격사 시험에서 감면특례로 인해 실질적 경쟁률을 현저히 높이는 방식의 진입장벽은 더욱 정의롭지 못하다. 혹자는 판사·검사의 변호사 자격 자동취득에 대해서는 함구하면서 왜 우리만 가지고 비판하냐고 불평하기도 한다.
하지만 판사·검사는 사법시험이나 변호사시험을 통과해 변호사 자격을 갖춘 자 가운데서 선발하는 것인 반면, 다른 주요 자격사들의 경우는 ‘일반 공개경쟁’에 의한 자격 취득과 ‘공무원 경력’에 의한 자격 취득으로 구성된다. 적어도 시험을 통한 자격취득의 공정성에 있어 변호사와 다른 고급 자격사들은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군법무관임용법에 따라 선발된 군법무관의 경우 특별규정을 두어 변호사 자격을 자동 취득하게 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이런 지적은 법조 직역과 법조 유사직역(법조 관련 직역) 간의 우열이나 차별 논란과는 별개의 문제다.
현실에서는 법조인들의 전관예우가 큰 논란이 되지만, 법조 관련 직역에서 자동 자격 취득 전관(前官) 공직자들의 일탈 문제는 상대적으로 주목을 적게 받고 있다. 재직 중에는 관련 직역에 유리한 정책 수립이나 입법 활동을 하고, 퇴직 후에는 각 직역 관련 부처와 의뢰인 간의 예민한 협상에서 불법적 중간 매개 역할을 수행해 비판을 받기도 한다. 특히 고위 공직 출신 자격사 중에는 몇 년 지나지 않아 관련 직역 협회장을 맡으며 행정부처의 로비 창구 역할을 수행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업무 내용의 성실 신고나 각종 서류의 정보 공개를 법제화하자는 주장이 있으나 쉽게 관철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지배원리는 ‘공정’이고, 그것은 ‘같은 출발점’을 의미한다. 시험의 3대 공정성 요건은 출제위원 구성의 적절성과 문제 난이도의 적정성 및 경쟁 구도의 공정성이다. 출제위원 구성에 마피아 소문이 있어서도 안 되고 난이도 실패로 시험 선발의 목적이 왜곡돼서도 안 된다. 더욱이 응시과목 감면을 통해 전문자격사에 무혈입성을 허용하고 관련 직역에서 주도권까지 쥐게 하는 전관의 특혜는 우리가 추구하는 ‘공정과 형평’의 요청에 반한다. 전문자격이든 공직시험이든 그 진입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입법·행정·사법 권력에서 독립된 ‘고시부(高試府)’를 만들 필요가 있다.
신봉기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공법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