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 남용 않겠다던 文, 스스로 원칙 깨고 ‘정치적 결정’

입력 2021-12-25 04:01
서울역 대합실에서 24일 시민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사면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24일 밝힌 박근혜 전 대통령과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신년 특별사면 및 복권 이유는 ‘국민 통합과 대화합’이다. 하지만 이는 “5대 중대 부패범죄를 저지른 이에 대해 사면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원칙을 스스로 깬 결정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들의 사면 및 복권 소식이 전해진 날 사회 각계의 반응도 국민 대화합과는 거리가 멀었다.

문 대통령은 19대 대선을 앞둔 2017년 5월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며 사면권 제한 원칙을 공약으로 제시했었다. 사면이 대통령 고유 권한이지만 국민 뜻에 어긋나도록 남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구체적으로 뇌물·알선수재·알선수뢰·배임·횡령의 5대 중대 부패범죄를 저지른 이를 사면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유영하 변호사가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를 받아 적은 수첩을 취재진에게 보여주고 있다. 연합뉴스

이 원칙대로라면 뒷돈 범죄가 밝혀진 박 전 대통령과 한 전 총리는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 대상이 될 수 없다. 대법원이 유죄로 확정한 박 전 대통령 혐의 중에는 삼성·롯데로부터 수십억원의 뇌물을 받거나 SK에 뇌물을 요구하고 이병호 전 국가정보원장에게 특수활동비 2억원을 받은 사실이 포함돼 있다. 한 전 총리는 불법 정치자금 9억여원 수수 혐의가 대법원에서 유죄로 확정됐다. 청와대 스스로 2017년 12월 특별사면 발표 때 한 전 총리가 빠진 이유에 대해 “5대 중대 부패범죄 범주에 해당되기 때문”이라고 밝혔었다.

박 전 대통령과 한 전 총리가 벌금 및 추징금을 미납했다는 점도 입길에 오른다. 박 전 대통령은 추징금 35억원을 완납했지만 180억원의 벌금을 내지 않았다. 한 전 총리는 추징금 8억8300만원 가운데 7억8000만원가량을 미납해 검찰이 자서전 인세 등을 계속 추징하는 실정이다. 정부는 이날도 벌금·추징금 미납을 선거사범 사면 제한 원칙으로 제시했다. 사회 통합이 필요하다지만 법질서 확립과 조화돼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이날 대전교도소에서 가석방으로 출소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뉴시스

박 전 대통령과 한 전 총리가 판결에 승복해 범죄를 뉘우치거나 국민 앞에 사과한 일이 없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참여연대는 “박 전 대통령 자신이 국정농단과 정경유착 뇌물 범죄를 인정한 적도 없고 사과한 일도 없다”고 비판했다. 한 전 총리 역시 대법원 판결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는 지난 6월 자서전을 출간하고 “6년 세월을 검찰이 만든 조작 재판과 싸웠다” “난 결백하다”고 재차 주장했다.

결국 이번 사면은 대선을 앞둔 ‘정치적 결정’으로 받아들여진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박 전 대통령 사면은 우리 사회를 재차 어지럽게 할 뿐”이라며 “문 대통령은 독재적으로 사면권을 행사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국정농단 사건 제보자인 노승일씨는 “한 전 총리의 복권과 박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맞바꾼 데 불과하다”며 “촛불 정신에 대한 배신”이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사면에 반대하는 분들의 넓은 이해와 혜량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박성영 김판 기자 ps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