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을 포함해 3094명을 특별사면·복권해 대선을 앞두고 극도로 분열된 우리 사회에 화합의 메시지를 보냈다. 문 대통령은 “사면이 생각의 차이를 넘어 통합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용서하고 포용하는 전기를 마련하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공약한 ‘절제된 사면’ 원칙이 훼손됐고, 억지로 균형을 맞춘 정치적 고려에 통합의 가치가 훼손됐다는 비난은 피하기 어렵다.
특사 명단을 보면 국민대통합을 위한 나름의 고심을 엿볼 수 있다. 2017년 3월부터 4년 9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이어온 박 전 대통령은 최근 건강이 급속히 악화된 점이 가장 크게 고려됐다고 한다. 중소기업인과 소상공인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는 서민들의 부담을 줄인다는 취지에서, 세월호 관련 집회와 밀양송전탑·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시위 참여자 등은 사회 갈등 해소와 지역 공동체 회복을 명분으로 포함됐다.
하지만 특사가 발표되자마자 진보·보수 진영 모두에서 쏟아진 비난을 보면 기대했던 화해와 통합이 실제로 이뤄질지 의문이다. 진보 측에서는 박 전 대통령 사면이 촛불 정신을 훼손한 것이라고 반발했고, 보수 측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특사에서 빠진 이유를 추궁했다. 박근혜정부 때 내란선동 혐의로 수감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가석방은 ‘박 전 대통령과의 형평성’ ‘가석방 요건 미달’ 등의 이유로 양측 모두가 거세게 반발했다. 게다가 대법관 전원이 유죄라고 했는데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복권은 사법 체계에 대한 신뢰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릴 우려가 있다. 한 전 총리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박 전 대통령을 끼워넣었다는 비난까지 나오고 있다. 갈등을 해소하겠다며 실시한 특사가 오히려 분열을 조장하고 상대를 비난하는 무기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특사의 기준을 엄격히 세우고 법제화를 검토해야 한다. 특사는 헌법이 보장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이 중세시대 제왕처럼 특사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때그때 바뀌는 자의적 기준으로는 국민들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은 결국 ‘사면권 최소화’와 ‘5대 중대 부패범죄 사면권 제한’ 공약을 깨뜨렸다. 대선이 끝난 뒤 공약을 통해 동의를 확보한 당선자와 협의해 실시할 것이라는 예상마저 깨고 서둘러 특사를 발표했다. 정치적 득실을 계산하는 사면으로는 통합을 이룰 수 없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