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사찰 논란

입력 2021-12-25 04:11

사찰(査察)은 조사하고 살핀다는 뜻이다. 하지만 한국인에게는 불쾌하고 음습한 단어다. 통상 일제가 독립운동가를, 독재시절 정권이 민주화운동 인사를 관리, 감시하던 것을 일컫기 때문이다. 민주화가 진전된 1990년대 이후 에도 사찰은 완전히 근절되진 않았다. 1990년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이 대표적이다. 문민정부인 김영삼정부 시절에도 안기부(현 국가정보원)의 비밀조직이 정치인 외 재계 인사와 언론인들도 도청하며 사찰한 일이 드러났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정보기관의 노골적 사찰은 요즘 거의 사라졌다. 그러던 찰나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통신조회 논란이 불거졌다. 통신자료 조회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공수처의 설립 취지나 조회 대상들을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다. 공수처는 검찰의 비대한 권력을 견제하고 인권침해적 수사 방식을 바로 잡기 위해 탄생한 기관이다. 그런데 공수처는 최근 기자 100여명과 민간인, 정치인들의 통신자료를 조회했다. 기자는 공수처 수사 대상도 아닌데 숫자가 날마다 늘어나고 있다. 백번 양보해 권력의 거악을 척결하려다 불가피하게 조회했다면 또 모른다. 조회 대상을 보면 ‘이성윤 서울고검장 황제 의전’ 등 공수처 비판 기사를 쓴 기자나 정부 비판 매체 기자들, 야당 인사들이 다수다. 이러니 괘씸죄로 무차별 저인망 사찰을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공수처가 뒤늦게 사과했지만 과거 수사기관의 구태를 따라 했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공수처는 출범 1년을 앞두고 있는데 자체 인지 수사는 물론이고 자체 기소 및 구속 건수도 제로다. 입건한 24건 중 4건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관련 고발 사건이다. 능력과 중립성 면에서 낙제점을 받고 있는 와중에 불필요한 논란마저 일으켰다. ‘무능’ ‘편향’ ‘구태’의 오명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했다. 개혁을 앞세운 기관이 비판받으면 안타깝게 느껴야 하거늘 많은 국민은 “가지가지 한다”고 혀를 찬다. 자칫 백해무익한 조직으로 비칠까 그게 걱정이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