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중증 병상 확보를 위해 정부가 고육지책으로 꺼낸 ‘중환자 격리해제 20일 상한 기준’을 두고 상급종합병원 중심의 의료현장이 혼란 상황에 빠졌다. 코로나19 증상 발현이나 확진 후 20일이 지난 환자는 중환자실에서 퇴실토록 했는데, 환자를 옮길 일반 중환자 병상이나 다른 병원으로 전원할 병상이 나지 않아 실효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갑작스러운 퇴실 통보를 받은 환자와 가족들의 원성도 크다.
일부 의료진은 환자와 보호자에게 정부의 전원 명령서 전달을 거부하거나 중환자실 체류 연장이 필요하다는 소명서를 제출하는 등 반발 기류가 커지는 모습이다.
‘빅5 병원’인 서울아산병원은 지난 20일 정부의 코로나19 중증 병상 퇴실 기준에 해당되는 환자 14명에 대해 전원 명령서를 통보받았다. 이 병원은 코로나19 중증 병상 53개 중 52개가 찼다. 병원 관계자는 23일 “14명 중 절반 정도가 에크모(인공심폐기)나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치료(CRRT) 등이 더 필요하다는 의료진의 판단 아래 중환자실 체류 연장 승인을 요청하는 소명서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퇴실 예정 환자와 가족들은 자체적으로 다른 병원을 알아봐야 하는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퇴실 통보를 받은 한 90대 환자 가족은 “기관삽관과 인공호흡기 치료를 해 조금 호전되긴 했지만 아직 자발 호흡이 완전히 가능한 상태는 아닌데, 20일이 넘었다고 갑자기 나가라고 하니 황당하다”며 항의했다. 병원 측은 진료협력팀을 통해 전원 가능한 곳을 알아보고 있지만 대부분이 중환자 수용을 기피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이 병원의 180여개 일반 중환자실도 꽉 차 환자를 옮기는 것이 쉽지 않다.
인천의 한 대학병원도 코로나 중환자실 퇴실 대상 8명의 전실·전원 명령을 통보받았지만 의료진이 환자와 보호자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이 병원 감염내과 의사는 “정부가 전원 필요성을 병원이나 의료진이 직접 환자 및 보호자에게 설명하라고 하는데, 의식이 없거나 정상 판단을 못하는 중증 환자나 가족에게 에크모를 잠시 떼야 하는 전원 과정에 상태가 나빠지거나 심정지로 사망할 수 있다는 얘기를 어떻게 하느냐. 또 사고가 나면 책임은 고스란히 의료진이 떠안게 된다”고 비판했다.
서울의 다른 대형병원은 전실·전원 통보를 받은 4명 가운데 1명은 준중증 병상, 3명은 일반내과 중환자실로 옮겼다. 병원 관계자는 “코로나 중환자들이 일반 중환자실을 차지하게 되면 응급실로 들어온 중환자나 암이나 심장, 장기이식 수술을 받은 사람들이 머물 공간이 줄어들어 향후 진료와 수술 일정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전파 우려도 여전하다. 엄중식 가천의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확진 뒤 20일이 경과하면 일반적으로 전염력이 떨어지는 건 맞지만 암이나 장기이식 등 면역 저하자, 고령자 등은 오랫동안 바이러스 배출이 이뤄질 수 있다. 극단적인 예지만 6개월까지 바이러스가 나온 환자도 있었다. 이런 환자를 20일이 지났다고 어떻게 일반 중환자들과 같이 있게 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중앙사고수습본부에 따르면 지난 20일 42개 의료기관의 코로나19 중증 병상 장기 재원자 210명에게 일반 중환자실, 타 병원으로 전실·전원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하지만 22일까지 63명이 중증 병상에서 계속 치료가 필요하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 소명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