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순 폭행범 응원해”… 법치 흔드는 ‘사적 복수’ 횡행

입력 2021-12-24 00:05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69)의 자택에 침입해 조씨를 둔기로 폭행해 현행범 체포된 20대 A씨가 지난 18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경기 안산단원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아동성범죄자 조두순의 집을 찾아가 폭행한 20대 A씨가 지난 18일 구속되자 경기도 안산단원경찰서에는 시민들의 전화가 여러 통 걸려왔다. A씨를 후원하고 싶다는 내용의 전화들이었다. 한 시민은 “변호사 선임비용이라도 보태고 싶다”며 A씨를 직접 만날 수 있는 방법과 담당 형사의 정보 등을 구체적으로 물었다고 한다. 경찰은 이럴 때마다 “도와드릴 부분이 없다”며 전화를 끊는다고 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죗값은 치러야겠지만, 그 마음이 이해가 가서 돕고 싶다” “판사보다 나은 판결을 내린 청년 의인”이라고 A씨를 치켜세우는 글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실제로 후원할 수 있는 방법을 문의하거나, 집단으로 모금을 해보자는 제안도 나왔다.

경찰은 난감하다는 반응이다. 조두순을 향한 국민들의 부정적인 감정이 이해되지만, 그렇다고 엄연히 현행법을 위반해 구속된 피의자 후원을 안내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한 경찰관은 23일 “아무리 그래도 폭행범에게 ‘잘했다’고 하면, 사법 질서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법 체계에 대한 불신과 흉악범에 대한 반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사적 복수’를 옹호하는 양상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법이 제대로 심판했는가’라는 질문이 동정론으로 표출됐다”며 “조두순은 집으로 돌아오고, 피해자가 이사 간 현실을 보면서 국가에 대한 분노 심리가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흉악범에 대한 사적 형벌에 대중이 이입하면서 만족감을 느낀 것”이라며 “성범죄에 대한 ‘무관용 원칙’이 사회에 자리 잡았는데 악명 높은 아동성범죄자가 출소하니 반감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정인이 사건’ 당시에도 ‘사적 복수’ 논란이 일었었다. 16개월 된 입양아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장모씨가 가족에게 쓴 옥중 편지를 한 유튜버가 임의로 공개한 것이다. 그는 수집 경로를 밝히지 않은 채 “당당하게 처벌받겠다”고 밝혔는데, 장씨 자택 우편함을 훔쳐 개봉한 것으로 추정돼 고소당했다. 또 장씨 남편이 있는 교회를 찾아가 욕설을 하며 뒤를 쫓기도 했다.

하지만 흉악범을 대상으로 한 사적 복수 역시 법치주의를 흔드는 범죄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법치국가의 형벌 권한은 사법기관에 있다”며 “사적 복수나 제재가 만연해지면 사회 질서가 붕괴되기 때문에 더 큰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법 테두리 안에서 행동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개인정보를 무단공개하는 식의 복수 행위도 처벌 대상이다. 일례로 지난해 ‘n번방 사건’ 당시 성범죄자 신상을 공개한 ‘디지털교도소’ 운영자는 지난 9일 상고심에서 징역 4년을 확정받았다. 이 사건을 담당한 1심 재판부는 “자의적 정의감 탓에 일상 생활을 이어가지 못할 정도의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