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부터 통신자료를 조회당한 것으로 확인되는 대상이 언론계를 넘어 정치권, 민간인으로까지 확대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비리 고위 공직자와 통신한 적이 없다는 이들에 대해서도 공수처가 자료를 요구한 것으로 드러나자 김진욱 공수처장에 대한 고발도 잇따르고 있다. 의원 다수가 통신자료를 조회당한 야권은 아예 ‘공수처 해체’를 주장하고 나섰다.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23일 경기도 과천시 공수처를 항의 방문했다.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은 “공수처가 언론인, 민간인들뿐만 아니라 야당 의원들에 대해서도 무차별적으로 통신사찰을 하고 있다”며 “불법적인 행위이므로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공수처장에게 설명을 듣기 위해 왔다”고 했다. 앞서 공수처가 최소 7명의 야당 의원의 통신자료를 조회한 일이 드러나면서 공수처의 사찰 및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 확산됐었다(국민일보 12월 23일자 4면 보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신문협회·한국여성기자협회·한국인터넷신문협회 4개 언론 단체도 성명을 내 공수처의 광범위한 통신자료 조회에 강한 유감을 표하며 “반헌법적 언론사찰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번 일은 지난 8일 김경율 회계사가 공수처에 통신자료가 제공됐음을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곧이어 법조계를 취재하는 언론인 다수가 공수처에 무더기로 통신자료를 조회당한 사실이 드러나 ‘언론 사찰’ 논란으로 번졌다. 공수처는 지난 13일 “주요 피의자의 통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확인”한 것이라고 했고, 통신자료를 조회한 일부 인사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해명은 오래지 않아 설득력을 잃었다. 언론인의 어머니와 여동생까지도 공수처에 통신자료가 제공된 사실이 지난 20일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어 ‘채널A 사건’에 연루됐고 1심 무죄를 선고받은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에 대해서도 공수처가 통신영장을 발부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공수처에 통신자료가 제공됐음을 확인한 이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풍경도 생겨났다. 각자의 열람 확인서에 적힌 문서번호와 제공 일자를 토대로 공수처의 수사 사건을 짐작하는 것이다. 공수처는 적법한 수집이었다는 입장을 되풀이하지만 다른 수사기관의 시선은 곱지 않다. 강수산나 검사는 검찰 내부망에 ‘이상한 수사, 이상한 영장’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인권침해를 수반하는 강제수사는 범죄혐의 입증에 필요 최소한의 범위에서 행해져야 한다”고 했다.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법세련)는 김 처장 등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앞서 서민민생대책위원회도 비슷한 고발을 했고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