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소련 시절로 회군?… 청소년부터 장년까지 군사조직화 선풍

입력 2021-12-24 04:06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국방부 확대간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서방 대 러시아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러시아에선 청소년부터 장년층에 이르기까지 군사조직화 선풍이 불고 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유나르미야(Yunarmiya·소년군) 소속 청소년 6명에 대한 애국주의 표창장 시상식 풍경을 전하면서 “군화와 군복을 갖춰 입고 도열한 학생들은 정규군을 방불케 하는 모습이었다”고 표현했다.

현재 러시아 전국 각지에서 8~16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애국주의 교육’ 열풍이 불고 있다. 국방부에 의해 연중 실시되는 이 교육에서 학생들은 군사지도 독해법을 습득하고 사격 훈련을 받는다. 자신들이 겪어보지 못했던 과거 소련 시절 공산주의 역사도 교육받는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총 쏘는 법을 배우고 제식훈련을 받으며 군사전술 기초지식을 익히는 셈이다. 청소년들은 애국주의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준군사조직인 유나르미야에도 가입할 수 있다. 러시아 정부는 유나르미야를 60만명 규모의 국방부 직속 준군사조직으로 확대 개편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나르미야 교관으로 일하는 시야토슬라브 오멜첸코는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유사시 이 아이들은 즉각 정규군에 편성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게 내 임무”라며 “지금은 이런 군사적 준비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오멜첸코는 구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이었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군사전술 강의와 국제정세 토론회, 소련 역사 재평가 강연 등을 실시하고 있다.

국제정세 토론회에 나온 정부 초청인사들은 대부분 “소비에트연방 시절부터 우리는 서방을 대상으로 도발적 전쟁을 벌인 적이 없으며 우크라이나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는 쪽은 오히려 서방”이라는 주장을 내세운다.

이는 “소비에트연방은 침공을 감행한 나치 독일에 맞서 위대한 승전을 기록했다”는 정부의 소련 역사 미화 캠페인과 교묘하게 결합해 러시아인들 사이에 “지금 국제정세에선 우리 스스로 무장해 국가이익을 지켜야 한다”는 왜곡된 애국주의로 쏠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여론조사기관 라바다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 국민의 39%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여기고 있으며 절반 이상이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진다면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NYT는 이처럼 러시아 사회에 군사화 선풍이 부는 것에 대해 노비타가제타 드미트리 무라토프 편집장의 말을 인용해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의 ‘전쟁 팔이(selling war)’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무라토프는 올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언론인이다. 신문은 “모스크바 거리에선 ‘붉은 군대’ 벽화가 흔한 풍경”이라며 “역사 속으로 퇴장한 소련군의 얼굴이 거리를 채운 걸 볼 때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전으로 되돌아간 느낌이 들 정도”라고 전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