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점으로 돌아간 한반도 평화
재정 쏟아부어 땜질한 일자리
정책 실패 상징 돼버린 부동산
용어마저 사라진 소득주도성장
내로남불에 희화화된 공정
편향 논란 더 커진 검찰개혁
대비 미흡한 인구·기후위기
의료붕괴 위기 맞은 K방역
임기 중 성과 묻는 질문에
"세계 톱 텐" 말한 대통령
최선의 답변을 한 듯하다
재정 쏟아부어 땜질한 일자리
정책 실패 상징 돼버린 부동산
용어마저 사라진 소득주도성장
내로남불에 희화화된 공정
편향 논란 더 커진 검찰개혁
대비 미흡한 인구·기후위기
의료붕괴 위기 맞은 K방역
임기 중 성과 묻는 질문에
"세계 톱 텐" 말한 대통령
최선의 답변을 한 듯하다
지난달 국민과의 대화에서 누군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임기 중 가장 큰 성과와 아쉬운 점”을 물었다. 이 질문이 안 나왔다면 이상했을 것이다. 임기가 끝나가는 대통령의 사실상 마지막 소통무대였다. 문 대통령은 이렇게 답했다. “경제뿐 아니라 민주주의, 문화, 방역, 보건의료, 국방력, 외교, 국제협력까지 모든 분야에서 세계 톱 텐으로 인정받을 만큼 국가 위상이 높아졌다는 게 큰 성과입니다.” 충분히 예상됐던 질문이니 답변을 준비했을 법한데, 조금 어색했다.
질문은 임기 중에, 그러니까 문재인정부에서 해낸 것과 해내지 못한 것을 꼽아 달라는 취지였다. ‘세계 톱 텐의 위상’은 한마디로 선진국이 됐다는 것이다. 이 정부가 해냈다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문 대통령도 마무리 발언에서 “역대 정부의 성취와 국민의 오랜 노력이 모여 이뤄진 것”이라고 부연했다. 아쉬운 점은 “집값을 안정시키지 못한 것”이라고 콕 집어 답하면서 성과는 왜 두루뭉술하게 말했을까. 경제부터 국제협력까지 나열한 분야를 다 잘했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잘못된 건 내 탓으로, 잘된 것은 국민 덕으로 돌리는 겸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청와대와 정부에서 요즘 ‘성과’를 말하는 목소리가 부쩍 늘었다. 문 대통령부터 성과의 폄훼를 여러 번 우려했다. 그런 터에 성과를 제대로 알릴 기회를 비켜가는 듯했던 저 대목은 왠지 고개를 갸웃하게 했다.
속마음을 볼 수 없으니 짐작할 뿐인데, 문 대통령이 이 질문에 가장 하고 싶었던 답변은 ‘평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대북정책에 많은 열정을 쏟아왔다. 비핵화에 근접했다면 문 대통령이 해낸 거라는 평가에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톱다운 협상에 직접 나서고 “삶은 소대가리” 같은 욕설을 인내하며 손을 내밀었지만, 결과는 아는 대로다. 결렬된 대화는 복원될 기미가 없다. 북한은 김정은 집권 10년의 성과로 핵무력 완성을 꼽았다. 평화는 성과가 되기 어려웠다.
대신 ‘일자리’를 꼽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문재인정부는 일자리정부를 표방하며 출범했다. 청와대에 설치된 일자리상황판은 근사해 보였다. 하지만 상황판이 뉴스에 등장한 건 처음 몇 번이다. 코로나 이전 세계 경제가 양적완화의 호황을 누릴 때 우리는 유독 고용참사에 시달려야 했다. 최근 경제부총리가 “99.9% 고용 회복”을 자랑했는데, 태반이 재정을 쏟아 만든 한시적 일자리다. 청년 체감실업률은 25%, 취업포기 청년은 160만명에 이르고 있다.
성과로 내놓고픈 후보군 앞자리에 어쩌면 ‘부동산’이 있었을지 모른다. 노무현 대통령이 “할 말 없다”며 고개 숙인 문제였다. 만회하자는 생각이 마음속에 한 자락 있지 않았을까. 노무현 방식을 한층 강도 높게 밀어붙였는데, 지금 여당 대선 후보가 앞장서 뒤집는 실패의 상징이 돼버렸다. 문 대통령은 줄곧 약자의 편에 서 왔다. 경제적 약자를 위한 ‘소득주도성장’은 회심의 구상이었겠지만, 역시 성과라 하기 어려운 처지다. 최저임금 인상이 최저임금 생활자의 일자리를 빼앗는 역설에 발목 잡혀 언제부턴가 정부도 안 쓰는 용어가 됐다.
사실 문재인정부의 성과는 ‘공정’이었어야 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거라고 선언하지 않았나. 최우선 가치로 내건 공정은 조국 사태를 거치며 내로남불이 되고 말았다. 조국 개인의 불공정 행태보다 옹호하며 달려든 정권의 행태가 이를 희화화했다. 이번 국민과의 대화에서 공정은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검찰 개혁’은 어떤가. 윤석열 총장이 물러남과 동시에 여권에서 검찰 개혁을 말하는 이가 일제히 사라졌으니 완결된 것일 테다. 개혁된 검찰의 모습은 당황스럽다. 수사마다 정치적 편향 논란이 이어지고 수사력까지 의심받게 됐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1년이 되도록 실적이 없는 데다 사찰 의혹에 휘말렸다. 권한이 커진 경찰은 신변보호도 제대로 못해 불신의 늪에 빠졌다. 외형상 완결됐지만 성과일 순 없어 보인다. 당장의 업적이 아니라도 미래를 준비했다면 큰 성과인데, ‘인구 위기’에 대응할 연금개혁은 손도 대지 않았고, ‘기후 위기’에 대처할 친환경에너지 정책은 탈원전 구호에 묻혀 뿌리 내리지 못했다.
이 정부가 해온 일을 돌아보며 떠오른 키워드는 대략 이렇다. 그나마 ‘K방역’을 성과로 꼽으면 좋겠지만 의료 붕괴 위기 상황에선 공감하지 않는 이가 많을 듯하다. “세계 톱 텐 국가.” 문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답변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