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의 내 삶은 공부를 향한 것이었고, 자신 있는 것은 공부밖에 없었다. 가족끼리 외식을 할 때도 친구들에게 뒤떨어질까봐 밥 먹는 시간 이외엔 수학문제를 풀었고, 영어는 교과서와 교재를 통째로 외웠다. 새벽기도를 가려고 일어나는 어머니께 들켜 혼날까봐 후다닥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곤 했다. 결국 중 3때 개교 이래 처음으로 전 과목 올백을 맞는 기록을 세웠다.
누구나 인정하고 칭찬하는 ‘엄친딸’이었지만, 마음은 늘 불안하고 속은 썩어 들어갔다. 결국 누적된 스트레스로 복통, 두통, 현기증, 만성 소화불량, 변비 등으로 한방과 양방을 넘나들며 응급실에도 자주 실려 갔다. 게다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수시로 가위에 눌리고 환청까지 들렸다. 그래도 공부는 멈추지 않았다. 과외도, 학원도 성에 차지 않아 한 번도 가지 않았는데 고3 모의고사에서 400점 만점에 390점을 무난히 받으며 서울의 최고대학에 갈 자신도 있었다. 그런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수능에서 평소보다 무려 50점이나 떨어졌다. 처음 맛본 좌절에 경포 호숫가를 방황하다가 문득 물 밑을 보며 죽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부모의 만류에도 서울 진학을 결심하던 날, 내가 좋아하는 교회 언니가 전화를 했다. “야, 좁지만 맑은 물로 와.” 그 한마디가 내 인생을 바꾸었다. ‘그래. 이제 맑은 물에 가서 모든 걸 싹 갈아엎어 버리자!’하며 최고대학의 꿈을 접고 춘천교대에 차석으로 입학했다. 교회 대학생기숙사에 살며 유치부·초등부 교사에, 예배 때마다 반주도 하며 별 고민 없이 열심히 교회에 다녔다. 그러다 어느 예배 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말씀이 새삼 선명히 들렸다. ‘아니, 죽었던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 나?’ 수많은 자료를 찾으며 고민하는데 언니가 예수님 제자들 이야기를 했다. ‘수많은 기적도 보며 따랐던 제자들이 예수님이 십자가 못 박히실 때 다 도망갔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그 말씀들과 성경을 다 믿었다. 그리고 부활을 전하다가 순교했다.’는 말에 충격을 받는 순간, 예수님의 부활은 확실한 사실임이 알아졌다.
그리고 며칠 후 목사님의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근원적인 죄’라는 말씀에 다시 충격을 받았다. 그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태 예수님을 잘 믿어 왔고, 지금도 믿고 있고, 또 교회에 나온 사람 중에 예수님 안 믿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저런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길을 걸으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화장실에 가서도 ‘왜 예수님 안 믿는다고 하지?’ 온통 그 생각에 그 죄가 무엇인지, 얼마나 무서운지 알려 달라고, 회개하게 해 달라고 납작 엎드렸다. 그러다 수련회 때, 목사님 목소리가 하나님 음성처럼 벼락같이 가슴에 떨어졌다. “니가 주인이잖아!” 나는 바로 고꾸라졌다. ‘아, 내가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었지? 당신 필요 없다, 내가 주인이니 간섭하지 말라, 내 인생 내 꺼다!’하며 꼬장꼬장 머리 쳐들고 있는 내 중심에 억장이 무너졌다.
나와 함께 하고 싶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분을 두고, 공부와 명예에 질질 끌려 다니며 하나님을 무시한 악랄한 죄를 성령께서 선명히 비춰주셨다. 그제야 알았다. 공부니까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을 뿐, 나는 게임이나 도박 중독자와 똑같은 중독자였다. 그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니 내 사명이 선명해졌다. 임용고사를 눈앞에 두고도 매일 새벽예배에 목요일을 제외한 매일 저녁 각종 예배에다 금요일 철야기도, 토요일과 주일의 세 번의 예배와 반주, 게다가 생활관 맏언니로 동생들 식사까지 챙겼다. 공부할 시간이 거의 없었지만, 생명 다해 아이들을 사랑하고, 기도하는 교사가 되리라는 비전으로 우선순위를 놓치지 않았다. 매일 새벽예배에 갔다가 바로 출근하는 힘든 일과에도 가위 눌림이 없어지고 공부 내용이 스캔되듯 머릿속에 쏙쏙 들어왔다. 토익점수 가산점을 위해 옥스퍼드, 캠브리지에서 나오는 실전 문제를 풀어 900점을 넘겼고, 하나님께선 1차 필기시험에서 강원도 수석이라는 엄청난 선물을 주셨다.
“선생님은 예수님 믿는 사람이에요. 예수님이 선생님을 사랑한 것처럼 1년간 마음껏 여러분을 사랑해 주려고 해요.” 이런 첫 인사로 새학기를 시작하고, 새벽마다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기도한다. 아이들을 향한 사랑의 진심이 학부모들께도 전해져 전도의 길이 열리고, 복음을 받은 선생님들과 신우회도 시작했다. 믿음의 동역자를 만나 결혼을 하자 하나님께 연년생 두 딸을 선물로 주셨다. 5년간 육아휴직 후 복직 3년차가 되었다. ‘워킹맘’의 삶은 힘들지만 초등학생이 된 두 딸이 든든한 믿음의 동역자가 되니 힘이 솟는다. 오늘도 나는, 우리 가정과 교실에 그리스도 향기가 가득하기를 기도하며 영혼들이 기다리는 학교로 기쁘게 출근한다.
정혜리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