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다니면서도 가정 형편이 어려우니 부모님도 세상도 원망스러웠다. 남성 위주의 사회와 여자에 대한 차별과 제약도 늘 못마땅했다. 자라면서 여성 신체에서 오는 불편함과 남 앞에 잘 나서지도 못하는 소심한 성격으로 ‘남자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부턴가 여자애들과 노는 것이 시시해지며 무술이나 전쟁놀이를 즐기기 시작했다. 말투나 행동도 건들거리며 터프해졌고, 고2 때 학교축제의 남장여장 콘테스트에 신청하여 터미네이터처럼 가죽점퍼에 검은 선글라스, 총을 들고 등장하여 폭발적 인기도 얻었다. 어쩌다 ‘남자 동성애’가 등장하는 만화나 영화를 보면 꺼림칙했지만 괜히 마음이 설렜다.
‘금단의 열매에 대한 유혹’ 또는 ‘일탈에서 오는 쾌감’ 등의 호기심은 점점 깊어져 동성애도 사랑의 모습 중의 하나이고, ‘플라토닉 러브’로 미화되었다.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도 그냥 ‘사람과 사람간 사랑’이라는 생각을 하며 고3때에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 그러나 마음의 불만과 의문들은 억누를 수가 없었고, 세상적 지식은 늘 기독교적인 가치관과 대립했다. 어느 사이에 사람을 차별하는 듯한 종교는 고리타분한 인간들이 만든 올무처럼 느껴졌다.
대학에 들어가 철학을 전공하며 결국 완전히 하나님을 등지고 탕자의 삶을 살았다. 여자도 남자와 똑같음을 보여주며 잠재된 욕구를 마음껏 발산했다. 술도 강한 척하면서 끝까지 버텼다. 여자도 군대에 가야한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사관학교에 지원도 했다. 친구들은 이런 나를 ‘머리 긴 락커’라고 놀리며 대놓고 남자취급을 하기도 했다. 한때는 성전환수술로 남자 대 남자로 사랑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한 내 마음은 이미 동성애자나 마찬가지였다. 당시 동성애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방영되었는데 6살 딸과 함께 보며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끼리도 결혼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10년의 삶을 돌아보니 지옥 같은 삶이었다. 결국 세상 지식에는 ‘정답은 없다.’는 결론을 내리며 인간관계에서 오는 실망으로 사회운동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마음도 식어갔다. 온갖 염려를 끌어안고 불면과 우울증에 시달리기 시작하며 ‘죽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마음이 바닥을 칠 때, 큰아이 친구 엄마를 통해 얼떨결에 한마음교회에 따라갔다. 너무나 확신에 찬 말씀과 성도들의 모습을 보고 여기는 무언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정말 계신지 확증하고 싶던 내게 사도행전의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로 부활을 주셨다.’는 말씀이 들렸다. 그때 어느 분이 ‘느낌과 감정으로 믿는 신앙은 언제든 흔들리지만, 부활은 내 상태와 상관없이 역사적인 사실을 보고 믿는 것이라 흔들림이 없다.’고 했다.
‘역사도 조작일 수 있지 않나? 제자들이 거짓말 한 건 아닌가?’ 의심으로 혼란스럽던 어느 날, 이상한 꿈을 꾸었다. 오물로 가득 차 있는 깊고 거대한 화장실에 빠져 당장 죽게 되었는데, 눈앞에 단 하나의 동아줄이 있었다. 그 앞에서 나는 ‘이게 진짜 믿을 만한 것일까? 썩은 줄이면 어쩌지?’하고 있었다. 며칠 후 어느 자매의 ‘부활은, 네가 믿든 믿지 않든 이미 일어난 사실이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1+1=2’가 확실한 것처럼 사실은 사실이고 진리는 진리였다. 다른 역사서에도 부활을 전하다가 죽어간 제자들의 기록을 보며 2천 년 간 많은 사람들이 아무 이익도 없는 일에 처참하게 목숨을 버릴 리는 없다는 확신이 섰다. 부활은 사실이고 부활하신 그분은 진짜 하나님이셨다. 내 견고한 장벽들이 한 순간에 허물어졌다.
그때 마침, 성령께서 죄는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한 것임을 알려 주셨다. 내가 주인이 되고 내 생각이 기준이 되어 ‘누가 대신 죽어달라고 했냐?’고 대들며 하나님을 무시한 죄, 내가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한 그 죄 때문에 하나뿐인 아들을 보내어 십자가에 달리게 한 ‘진짜 사랑’ 앞에 나는 그대로 굴복했다. ‘너의 옛사람은 이미 십자가에서 죽었으니 이제 나와 사랑을 나누며 기쁘게 살자.’고 하시는, 이 땅에 없는 주님의 사랑이 부어지며 진정한 자유가 내게 임했다.
드디어 동성애가 제대로 보였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습대로 살지 않고 소중한 가정을 파괴하고, 생명 탄생을 위한 거룩한 성을 쾌락의 도구로 전락시킨 것에 한눈을 판 것이 너무나 큰 죄였다. 동성애가 왜 나쁘냐며 하나님을 대적하던 내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니 단 하루를 살더라도 주와 복음을 위해 멋지게 살고 싶은 소망으로 가득했다.
아파트 앞에 부스를 차려 부침개를 구워 나누며 전도하고, 전철역 앞에서 지체들과 함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장소도 여건도 전도의 열정 앞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질병이 창궐하고 세상은 점점 어려워져 가지만 그럴수록 더욱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고 영원한 하늘나라만 바라보고 달려갈 것이다.
서경아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