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생일 주인공 찾기

입력 2021-12-24 04:07

며칠 전부터 얇고 조금 큰 새 책 한 권이 집 안에서 굴러다녔다. 식구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으니 버릴 요량으로 뭔가 싶어 열어봤다. 2022년 일본 달력이었다. 새해 달력을 받아들면 곧바로 ‘빨간 날’을 찾아보는 게 우리네 습관 아니던가. 한 나라가 기념해야 할 날은 당연히 쉬는 날일 테고 춘분, 추분, 녹색의날, 바다의날, 산의날 등이 공휴일이었다. 크리스마스와 부처님오신날은 공휴일이 아니었다.

내친김에 나라별 공휴일을 검색해봤다. 대체로 현충일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등과 비슷한 기념일, 양력 음력에 따른 새해 첫날 등이 공통된 공휴일이었다. 이슬람교를 국교로 정한 나라들은 종교 관련 공휴일을 갖고 있었다. 국교가 없는 나라 중 크리스마스와 부처님오신날 모두 공휴일인 나라는 우리나라와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중국 특별자치구 홍콩과 마카오 정도였다. 인도네시아는 다종교 국가, 싱가포르는 다문화 국가여서 이슬람교 힌두교 등의 기념일도 공휴일이다. 홍콩 마카오는 역사의 특수성으로 두 종교의 기념일을 모두 공휴일로 정했다고 이해됐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다문화 국가라고 하기엔 다양성이 너무 없고, 다종교 국가라고 하기엔 종교를 가진 인구가 너무 적다.

한국갤럽이 올해 5월 발표한 ‘한국인의 종교 1984~2021’에 따르면 1984년 44%인 종교인 비율은 2004년 54%로 늘었다가 2021년 4월 현재 40%로 줄었다. 2021년 종교 분포는 개신교 17%, 불교 16%, 가톨릭 6%다. 비종교인의 75%는 한 번도 종교를 가진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 증감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영향력이 ‘증가하고 있다’는 응답은 1980년대 약 70%에서 1997년 59%, 2004년 54%, 2014년 47%로 줄었고, 2021년에는 18%로 급락했다. 한국리서치가 지난 15일 발표한 ‘종교지표 2021년’에서의 종교 분포는 개신교 20%, 불교 17%, 가톨릭 11%였다. 50%는 종교가 없다고 답했다. 믿는 종교의 변화도 물었다. 1년 전과 비교했을 때 개신교와 불교 신자 중 12%, 가톨릭 신자 중 8%는 개종하지 않고 종교 생활을 포기했다. 종교 호감도(100점 만점)도 좋은 점수는 아니다. 가톨릭은 50.7점, 불교는 50.4점 개신교는 31.6점을 받았다.

낮은 종교 지표, 크리스마스와 부처님오신날을 공휴일에서 제외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하긴 한국갤럽 조사에서 종교인 비율이 가장 높았던 2004년, 리크루트가 직장인 674명을 대상으로 법정 공휴일 축소 시 제외 대상을 묻는 조사에서 식목일 어린이날에 이어 부처님오신날과 크리스마스가 선택되기도 했다. 매년 12월이면 거리와 상점은 캐럴과 온갖 장식으로 채워진다. 아이들은 산타클로스에게 선물을 달라고 빌고, 상점들은 크리스마스 할인을 시작한다. 연말연시와 맞물려 사회 분위기는 들뜬다. 과장해서, 교회라고 다르지 않다. ‘우리’만을 위한 행사를 열고 ‘우리’끼리 시끌벅적 즐거워한다. 생일 맞은 주인공을 찾기 힘들다.

중세 교회가 특권을 누리며 부와 권력, 사치에 빠져있을 때 프란치스코는 복음으로 돌아가 청빈 겸손의 삶을 살면서 교회의 모습을 되돌리는 초석이 됐다. 산타클로스의 실제 인물로 알려진 3세기 터키의 니콜라스는 가난하고 아픈 사람을 돌봐주는 삶으로 성자의 호칭을 받았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조금은 차분한 크리스마스를 맞게 됐다. 조용해지면 작은 소리도 잘 들린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있어’ 찾을 수 없던 생일 주인공을, 그의 흐느낌 소리로 어쩌면 쉽게 찾을지 모른다.

전재우 사회2부 선임기자 jw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