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코로나 패러독스와 성탄절

입력 2021-12-25 04:08

우리나라 대표 지성인에서 영성가로 거듭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최근 말기암 투병 중에도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시대에 영성적인 메시지를 주기 위해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혼신을 다한 인터뷰에서 ‘코로나 패러독스(Corona Paradox)’라는 새로운 의제를 제시했다.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을 극복할 마지막 희망은 기독교라고 설파했다.

전파력이 강한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의 출현으로 연말 연초 일상회복을 중단해야 하는 고단한 시점에 역설과 희망을 얘기하는 것이 뜬금없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역사적 고비 때마다 시대정신을 고민해온 이 전 장관의 코로나 극복 메시지는 큰 울림이 있다.

코로나 패러독스(역설)란 무엇인가. 왕관을 상징하는 코로나가 대역병의 이름이 된 것이 역설이고, 팬데믹을 극복하고 나면 더 나은 세상이 올 것이라는 희망이 또 다른 역설이다. 역사적으로 중세시대 페스트가 유럽을 휩쓸고 간 뒤에 종교개혁과 르네상스가 시작되면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이 전 장관은 생명의 가치를 중시하는 기독교 신앙에서 절망 속 희망을 본 것이다. 그는 “오늘날 불신받고 쇠퇴해가는 기독교가 생명의 가치를 일깨우고 인간의 오만과 그로 인한 재앙을 극복했던 그 힘을 되살려내는 것이 희망”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팬데믹 속에 성탄절을 맞았다. 특별방역대책으로 거리는 한산하고 가게는 빈자리가 많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끼기 어렵다. 하지만 예년처럼 들뜬 분위기가 아닌 차분함 속에 우리 곁에 오시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수 있음은 다행한 일이다.

예수님이야말로 역설의 주인공이 아닐까. 존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의 가장 낮은 마구간에서 태어났고, 아무런 죄가 없으신 분이 죄 많은 우리를 대신해 굴욕적인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하지만 지극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상징되는 십자가의 역설로 우리는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 구원을 얻게 됐다. 어둠 속 빛의 인도로 예수님의 탄생을 경배하러 온 동방박사들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기에 팬데믹의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할 수 있다.

이번 성탄절에는 코로나 패러독스를 통해 고통의 참 의미와 시련 후에 올 희망을 생각하며 차분하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자. 특히 예수님이 재림해서 지금의 팬데믹 상황을 보신다면 크리스천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실지 돌아보자. 과연 우리는 그분 앞에서 맡겨진 사명을 완수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선진국이 자국 이기주의로 백신을 독점한 결과 아프리카의 가난한 국가들이 제대로 접종하지 못해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발생했다는 분석이 있다. 탐욕이 낳은 재앙인 셈이다. 우리는 그동안의 무절제하고 방만했던 생활을 성찰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형제들을 돌보지 못했던 것을 반성해야 한다. 코로나 시기에 기부하는 사람이 크게 줄어 사회복지시설이 더욱 힘들어졌다고 한다.

한국교회총연합은 성탄 메시지에서 한국교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그 낮은 자리로 내려가 예수님의 마음으로 이웃의 손을 잡아주고, 지친 등을 쓰다듬어 주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사명을 다하자”고 권면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성탄의 사건은 세상의 구원과 해방을 위해 하늘 영광 버리시고 낮은 곳으로 임하신 예수님의 길을 따라 세상을 섬기는 존재로 살아가라는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실천 명령”이라며 “생명 위기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 희망과 용기, 용서와 화해의 성탄 메시지가 되기 바란다”고 밝혔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모두 나에게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대로 올해 성탄절이 코로나로 지친 이들에게 쉼과 희망이 되기를 기도한다.

김재중 종교국 부국장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