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선거대책위원회 직책을 모두 내려놓는 초강수를 택했다. ‘울산 회동’에서 윤석열 대선 후보와의 갈등을 봉합한 지 18일 만이다. 윤 후보는 언론 인터뷰에서 “저게 저럴 일인가 싶다”며 이 대표를 향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문제를 풀기 위해 잠행이라는 승부수를 던졌을 때와는 또 다른 상황이다. 당대표가 선대위에서 손을 떼는 초유의 사태다. 이 대표 스스로도 이번에는 돌아올 여지를 두고 있지 않은 듯하다. 윤 후보를 향해서는 “선거는 후보 무한책임”이라며 대표 책임론을 반박할 포석도 깔아뒀다.
이 대표의 행보를 두고 극과 극의 평가가 존재한다. 타고난 승부사적 기질이 있다고 평가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자기 정치’에 매몰됐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당에 좋은 방향이든 아니든 이슈 메이킹에 탁월한 정치인이라는 것이다. 이 대표의 정치적 역량을 논하는 건 차치하고 이 대표의 상징성이 크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탄핵 이후 총선 패배의 수렁 속에서 만 36세의 헌정사 최연소 당대표가 탄생한 것 하나만으로도 회생할 길이 없어 보였던 국민의힘이 다시 안정궤도에 올랐다. 당 지지율은 더불어민주당을 제쳤고 정권교체의 기회까지 엿볼 수 있게 됐다.
특히 당의 중진 의원들 사이에서는 이 대표를 소중한 자산으로 여기고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한 중진 의원은 사석에서 “우리가 십몇 년간 하려고 해도 못했던 일을 이준석이 해낸 것”이라며 “젊은 사람들이 지금처럼 보수당에 눈길을 준 적이 있었느냐”고 했다. 대선 국면에서 이 대표의 가치가 평가절하되고 있는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대표가 예상치 못한 잠행을 이어갔을 때도 중진들 사이에선 “윤 후보가 직접 나서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기류가 우세했다.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처럼 대규모 팬덤까진 아니어도 확실한 지지층이 있다는 것 또한 거침없는 행보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다. ‘이대남’을 대변하는 거의 유일한 정치인으로서 젊은 남성들의 지지를 이끌어냈고, 이는 이 대표의 정치적 기반으로 자리 잡았다. 정치적 빚이 없다는 게 이 대표의 가장 큰 강점이다. 편한 말로 ‘혼자 컸다’는 자신감이 있고 본인의 선택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다.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도 이 대표의 선대위 직책 사퇴 결정을 두고 “성격상 설득한다고 돌아올 것 같지 않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자신감이 혹여 이 대표에게 독이 되지는 않을지 우려스럽다. 나흘간의 잠행은 ‘울산 회동’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낸 좋은 승부수였다. 지지부진하던 김 위원장의 합류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이 대표여서 가능한 과감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선대위 직책 사퇴라는 이번 결정에는 물음표가 생긴다. 그의 진심이 궁금해진다. “나는 (당대표가 아닌) 후보 지시를 듣는다”는 조수진 최고위원의 발언은 부적절했다. 그래서 조 최고위원이 사과를 했지만 이 대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생각처럼 선대위가 흘러가지 않는다고 해서 당대표로서 선대위에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쉬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앞선 잠행의 진정성에 의심이 들게 하는 행보다. 정권교체를 진심으로 바라는 것인지 묻고 싶어진다.
이 당의 정치적 자산으로서 이 대표를 누구보다 높이 평가하는 5선의 서병수 의원도 쓴소리를 하고 나섰다. 서 의원은 페이스북에 “당대표는 윤 후보의 ‘윤핵관’이 되면 품위가 손상이라도 되느냐”며 “대통령 후보를 중심으로 총괄선대위원장과 당대표는 한 몸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당대표는 물론이고 최고위원들은 전원 백의종군하라”고 직격했다.
젊고 유망한 정치인 이준석에게는 앞으로도 아마 많은 기회와 선택의 순간이 있을 것이다. 이번 결정이 훗날 어떻게 평가될지는 미지수다. “선거는 후보 무한책임”이라고 했지만 대선에서 패배한다면 이 대표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는 희망이 없던 보수당에 정권교체의 물꼬를 터준 최연소 당대표로 기억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말처럼 ‘자기 정치’만 생각하다 당에 분란을 일으킨 그저 ‘어린’ 당대표로 전락할까. 선대위 직책 사퇴 이후 이 대표의 행보가 궁금해지는 이유다.
이가현 정치부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