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돌보는 사람입니다’라는 책 제목은 사람을 정의할 때 추가해야 할 문장이다. 실제 그렇다. “우리 대부분이 인생의 어느 시점엔가 돌봄자가 된다.” 장애나 질병, 노화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는가. 영국의 경우 어린이의 8%, 노동 가능한 성인 인구의 19%가 장애인이다. 영국인 여덟 명 가운데 한 명이 만성질환이나 장애를 가진 누군가를 돌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돌봄을 말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다.” 장애 아동이나 성인 장애인의 존재는 주로 가족의 수치심 때문에 감춰진다. 이들을 돌보는 사람들의 이야기 역시 드러나지 않는다. 기껏해야 우리는 노인을 돌보는 얘기를 주고받을 뿐이다. 장애와 돌봄은 사적인 영역 안에 숨겨져 있다.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는 호주 출신 여성 사진작가 페니 윈서는 이 책에서 ‘거대한 소수’인 돌봄자들의 존재를 드러낸다. 이 책에서는 ‘돌봄자’(carers)를 질병, 장애, 정신건강상의 문제나 중독 때문에 지원이 필요한 친구 또는 가족을 무상으로 돌보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돌봄자는 저자에게 사진가, 작가, 싱글맘과 함께 정체성의 핵심이다. 그는 열한 살 때부터 우울증을 앓는 엄마를 돌봐야 했고 고등학교도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스물두 살이 되던 해 엄마는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13년 후 큰아들 아서가 자폐 진단을 받았다.
“아서가 자폐 진단을 받은 후 몇 달간, 나는 칠흑 같은 바다에 홀로 떠 있는 기분을 느끼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우리의 삶은 이제 과거와 같을 수 없고, 내가 아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으로부터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돌봄자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더해 책을 썼다. 장애가 우리 삶의 일부라는 것, 돌봄이 우리 대부분이 겪는 일이라는 것,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슬픔과 불확실성을 안고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씩씩하게 얘기한다. 솔직하고 사려 깊은 문장, 유용하고 신뢰할만한 정보, 그리고 용감하고 낙관적인 관점을 만날 수 있다.
돌봄자들을 얘기하는 것은 우선 돌봄자들을 위해 필요하다. 돌봄, 장애, 질병을 숨기고 쉬쉬할 때 돌봄자들은 자기만 애쓰고 사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가까운 친구와 가족도 돌봄이라는 의무가 우리에게 가하는 신체적·정서적 피해를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다. 저자는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통해 혼자가 아님을 기억할 것”이라며 자신의 책이 “돌봄자들의 외로움을 덜어줄 거라 기대한다”고 썼다.
돌봄자들 이야기는 장애와 돌봄의 세계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필요하다. 장애와 돌봄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장애를 그토록 두려워하는 것은 주류 문화가 장애를 한 사람에게 닥칠 수 있는 가장 큰 비극으로 묘사하기 때문이고, 장애의 현실을 거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들을 돌본 경험을 통해 나는 인간 정서에서 가장 아름다운 면과 가장 감추고 싶은 면 모두를 목격했다. 나는 공포와 죄책감에 시달렸고, 내게 요구되는 것들에 억울하고 화가 났고, 가장 놀라운 기쁨을 맛보았고,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치보다 더 열심히 사랑했고, 셀 수 없이 여러 번 주저앉아 울다가 마음을 추스르고 일어섰다.”
이 책은 장애와 돌봄의 현실을 보여주면서 슬픔과 비참으로 주조된 돌봄자 서사를 해체하고 재구성한다. 돌봄자가 된다는 건 삶 전체가 송두리째 뒤엎이는 경험이 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정규적인 직업을 놓아야 하고, 가정 내 다른 구성원을 제대로 돌봐줄 수 없고, 동정하거나 기피하는 사회적 시선을 견뎌야 하고, 경제적으로 빈곤해진다. 육체적으로도 매우 힘들고 정신적인 피로도 심각하다. 돌봄자가 우울증이나 번아웃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다른 이야기가 있다. 저자는 “아서의 엄마로 사는 것은 물론 힘들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기쁨이기도 하다”며 “사람들이 양면을 모두 볼 줄 알았으면 한다. 삶은 흑과 백으로,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만 나뉘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 “대부분의 돌봄자에게 돌봄은 삶의 나머지 부분과 똑같다”며 “때론 놀랍고, 때론 끔찍하고, 대체로 아주 평범하다”고 전한다.
장애는 비극이나 결함으로 취급됐지만 다름이며 정체성으로 볼 수 있다. 돌봄자의 삶은 많은 사람에게 비참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조금 다른 삶일 수 있다. 책 속에 남편이 자폐인이고, 세 아이 중 둘이 자폐인 가족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은 자폐를 가족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인다.
“자폐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그냥 자폐일 뿐이다. 자폐인 로즈의 아이들에겐 어려움도 있지만 남들에게 없는 능력도 있다.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꽤 심할 수 있고, 일상을 조정하고 아이들을 지원하는 일도 늘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다만 부모로서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하든 간에 적절한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 그들의 책임이라 생각할 뿐이다.”
돌봄자들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신을 다 소진하면서도 죄책감에 시달린다. 저자는 세상에 완벽한 엄마는 없다면서 완벽주의를 버리라고 조언한다. 돌보는 사람에게도 돌봄이 필요하다고 알려준다. 모든 걸 혼자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도 버려야 한다. 그는 “많은 이들이 홀로 해내려고 한다”며 “그러나 우리는 홀로 돌볼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러므로 돌봄자인 우리는 자립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거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토록 많은 재정적·물리적·정서적 제약 속에서 돌봄자는 어떻게 삶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돌봄자라는 역할은 우리의 정체성,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방식 등을 바꿔놓기도 한다. 돌봄자 경험이 새로운 발견이나 성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외상 후 성장’이란 개념이 있다. “괴로움 속에서 깊이 있고 만족스러운 삶을 위한 철학을 고민할 때, 시련을 견딜 수 있다는 새로운 믿음, 깊어진 관계, 타인의 고통을 연민하는 마음을 길러낼 수 있다.”
돌봄자로 살아가면서 우리는 두려움과 불확실성 속에서도 온전한 삶을 누리는 법을 배우게 된다. 저자는 “매번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힘을 내서 살아가야 했다. 다른 방법은 없기 때문”이라며 “그토록 힘든 날들에 내가 배운 것을 후회한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돌봄자가 된다. 그렇다고 삶이 비극이 되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도 우리 삶이 이어지는 것처럼.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