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대만 장관급 인사의 행사 참여를 요청한 뒤 당일 일정을 갑자기 취소해 국제적 망신을 자초했다. 사달은 지난 16일 발생했다. 탕펑(오드리 탕) 대만 행정원 디지털 담당 정무위원은 이날 우리 측 초청으로 서울에서 열린 ‘4차 산업혁명 글로벌 정책 콘퍼런스’에서 화상으로 주제 발표를 할 예정이었다.
우리나라와 대만은 공식 외교관계가 없다. 중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표부 형태의 관계를 맺고 있다. 비수교국이라 하더라도 대면도 아니고 전자우편으로 일정 취소를 통보한 건 중대한 외교 결례다. 이럴 바엔 초청하지 않은 게 옳았다.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김부겸 국무총리가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대통령 직속 기구다. 정부 최고위층이 위원장인 기구에서 결례를 범했으니 한국 외교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위원회 측은 콘퍼런스 불과 몇 시간 전 ‘양안 관계의 여러 측면을 고려한 조치’라며 대만 측에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우리 외교당국도 겉치레 말 한마디로 무마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을 게다. 그랬다면 외교를 말할 자격이 없다. 대만 정부는 우리 정부에 ‘외교적 결례이자 부적절한 조치’라고 공식항의했다고 한다. 정부로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반한감정을 갖고 있는 대만인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가 1992년 대만에 사전통보 없이 중국과 전격 수교한 데 따른 서운함과 배신감이 쌓인 때문이다. 한류 등의 영향으로 상당 부분 반한감정이 누그러졌다고는 하나 이번 일로 한국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미묘한 양안 관계를 모르는 외교당국도 아닌데 중국의 압력을 버틸 자신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대만을 끌어들이지 말았어야 했다. 차제에 좋은 일은 과잉홍보하면서 이번처럼 숨기고 싶은 치부는 외신을 통해 접하게 하는 정부 홍보 행태도 바뀌어야 한다.
[사설] 외교 결례로 국제 망신 자초한 대통령 직속기구
입력 2021-12-23 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