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사과의 정석

입력 2021-12-23 04:10

사과에도 정석이 있다. 신속할 것, 구체적일 것, 개선 방향이 담길 것, 진정성이 있을 것이라는 4원칙이 유명하다. 내용, 태도, 타이밍을 사과의 정석이라고도 한다. 마케팅기법에서 다루는 3A 사과도 있다. 고객에 동의(Agree)하고 사과(Apologize)하고 조치할 행동(Action)을 표현하라는 것이다.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지난 1월 사과문은 이런 원칙들이 적용된 명문이었다. 유 전 이사장은 검찰의 금융 계좌 추적 의혹을 제기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적었다. 그러곤 검찰, 노무현재단 후원회원, 시민들에게 차례로 사과했다. 이어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논리적 확증편향에 빠졌다”며 잘못의 원인까지 분석했다. 마지막으로 정치현안 비평을 하지 않겠다며 개선 방향까지 담았다. 이런 명문도 최근 유 전 이사장의 정치 평론 재개로 빛이 바랬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가족 관련 사과가 여전히 미흡하다는 여론이 높다. 사과문을 보면 미흡한 이유가 있다. 일단 구체적이지 않다. 윤 후보는 “이유 여하 불문하고 경력 기재가 정확하지 않다”고 했다. 개선 방향도 없다. “더 낮은 자세로 국민에게 다가가겠다” 정도다. 구체적이지도 않고 개선도 말뿐이니 진정성이 없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이 후보의 사과문은 조금 낫다. 아들의 잘못 인정, 현재 상황과 반성, 치료를 받도록 하겠다는 대책이 담겼다. 그런데 성매매 의혹과 관련해서는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만 답해야 했다. 구체적일 수도, 대책을 말하기도 힘든 사안이다.

부인의 과거 경력을 꼼꼼하게 해명할 수 있는 남편, 아들의 사생활을 꿰고 있는 아버지는 드물 것이다. 정치인의 사과는 과거의 잘못을 분명히 함으로써 현재 상황을 바로잡고 개선된 미래를 보여주는 정치적인 약속이다. 그런데 가족 관련 사과는 애매하다. 부인의 과거 이력, 아들의 과거 잘못이 대통령 국정 운영에 정말 악영향을 미칠 것인지 한 번쯤 고민할 필요가 있다.

남도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