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말 서아프리카 기니 수도 코나크리의 대통령궁에 군 병력이 들이닥치자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시민들이 군부의 폭거에 항의하는 장면이 먼저 떠오르겠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이들은 길거리에 나와 박수를 치며 군부의 입성을 환영했다. 민주화 영웅이었던 알파 콩데 전 대통령의 실정과 독재에 신물이 난 탓이었다. 민주주의 경험이 짧은 아프리카들이 취약한 경제와 정치적 불안을 극복하지 못하면서 쿠데타가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 민주 정부의 실책이 군부에 명분과 자신감을 심어준 셈이다. 수십년간 공들인 아프리카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봉착했다.
군부의 귀환
2021년은 쿠데타의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국민일보가 24일 미국 센트럴플로리다대와 켄터키대 연구팀의 데이터를 종합한 결과 올해 전 세계에서 5번의 쿠데타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0년 이후 가장 높은 빈도로 지난 5년간 발생한 모든 쿠데타를 합친 것보다도 많다. 이 같은 결과는 아프리카의 ‘쿠데타 도미노’에서 비롯됐다. 올해만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의 차드, 말리, 기니, 수단 네 나라에서 쿠데타가 발발했다. 마다가스카르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니제르에서도 쿠데타 기도가 있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10월 수단에서 쿠데타가 일어난 뒤 “‘쿠데타 전염병’이 돌고 있다”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나설 것을 촉구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쿠데타 전문가인 조너선 파월 센트럴플로리다대 교수는 최근 아프리카에서 쿠데타가 빈발하는 상황에 대해 “1980년 이후 가장 빈도가 높고 1970년대 군부 지도층이 주동이 돼 독립을 쟁취하던 때와 비슷하다”고 밝혔다.
민주 정부 실패에 자신감 얻은 군부
예나 지금이나 쿠데타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부패 실정 불황 등으로 거의 바뀌지 않았다. 수단의 쿠데타는 인플레이션이 거의 400%에 육박하고 4500만명이 굶주림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발생했다. 서아프리카 경제 대국인 나이지리아에서는 3명 중 1명이 실업자다. 현재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극빈층 수는 인구의 절반인 5억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은 취약한 아프리카의 경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군부 강경파 지도자들은 정부의 부패와 무능, 가난을 내세워 쿠데타를 정당화했다. 마마디 둠부야 기니 대통령은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1981년 가나에서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제리 롤링스의 말을 인용해 “민중이 엘리트에게 짓밟힐 때 군대가 일어나 민중을 해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과거와 달라진 측면이 있다. 바로 군부가 자신감에 차 있는 상태라는 점이다. 이는 군부의 쿠데타 명분이 현실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CNN은 분석했다. 아프로바로미터가 지난 2월 발표한 아프리카 18개국 대상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10명 중 6명은 자국에서 부패가 증가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3명 중 2명은 정부의 부패 종식 노력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게다가 72%는 당국에 부패를 신고할 경우 ‘보복이나 부정적인 결과를 감수해야 한다’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지리아 싱크탱크 민주주의발전센터의 아이다야트 하산 상무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들에 대한 불신이 만연하다”며 “(아프리카에서) 민주주의가 발전하지 못하면서 사람들이 쿠데타를 환영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WSJ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강대국들이 독재정권과 타협하려는 경향을 보여 정권 교체로 치르게 되는 비용이 줄어들었다는 점도 쿠데타 증가의 원인으로 꼽았다. 중국은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최근 쿠데타에 성공한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을 돕고 있다. 유럽연합(EU)도 쿠데타를 강하게 비난했지만 구체적인 조치를 내리진 않았다. 베르지니 보데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 선임연구원은 국제사회가 확고하고 단결된 대응을 하지 않음으로써 군부 지도자들의 집권을 방관해 왔다고 지적했다.
벼랑 끝 아프리카 민주주의
쿠데타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수십년간 이뤄낸 민주적 성과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 점점 더 민주주의의 핵심인 선거의 대표성과 책임 보장을 불신하는 이가 늘고 있다. 아프로바로미터 설문조사 결과 “선거 표심이 잘 반영된다”는 응답은 42%에 그쳤다. 11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여론조사에서도 무능한 지도자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비율은 11%포인트 감소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미 싱크탱크 체제평화센터는 2010~2020년 발생한 쿠데타 중 절반가량에서 더 강력한 권위주의와 무질서가 초래됐다고 분석했다. 불안정이 불안정을 낳는 셈이다. 더구나 앞으로 수년 내 아프리카에서 더 많은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국가 안정성, 전쟁 가능성 등을 나타내는 ‘취약국가지수’에서 상위 20개국 중 15개국이 아프리카 국가였다. CNN은 “쿠데타 가능성이 높아지면 아프리카에서 예측가능성과 안정성이 떨어지고, 이는 투자자 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결국 경제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