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표 공정’ 때리기… 이재명, 마이클 샌델과 화상 대담

입력 2021-12-22 04:03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1일 서울 중구 정동아트센터에서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와 ‘공정’을 주제로 화상 대담을 하고 있다. 이 후보는 “교수님의 책을 여러 차례 반복해 읽을 만큼 팬”이라며 “제가 대한민국 정치에서 고민하는 의제와 일치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1일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와의 대담을 통해 ‘공정’ 이슈 부각에 나섰다. 최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부인 김건희씨 허위 경력 의혹으로 ‘윤석열식 공정’에 균열이 생기자 재빠르게 빈틈을 파고든 것이다. 이 후보 측은 “공정 키워드를 탈환할 기회”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 후보는 이날 서울 중구 정동아트센터에서 샌델 교수와 ‘공정’을 주제로 온라인 화상 대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 이 후보는 능력주의에 대해 “실질적으로는 공정하지 않지만 형식적으로는 공정해 보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능력주의는 개인의 부와 권력을 각자 능력으로 정당하게 얻은 결과물로 보는 철학을 말한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강조해 청년층으로부터 상당한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 후보는 능력주의가 극단적으로 발현된 사례로 학력주의를 들었다. 그는 “대한민국의 학력 수준은 결국 부모들의 경제력과 거의 일치한다는 게 통계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며 “겉보기에는 개인의 노력에 따른 결과로 보여도 이미 출발점 자체가 실질적으로는 불평등할 수밖에 없는 상태라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이 후보는 이 대표의 ‘소수자·취약층 할당제 폐지’ 주장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박했다. 이 후보는 “유력 정치인들이 할당제를 없애야 한다는 얘기를 한다”며 “(그러나) 오로지 경쟁 결과물을 갖고 최종적인 결론을 내자는 건 매우 위험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이 후보는 “청년세대가 능력주의에 상당히 많이 몰입된 상태”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저성장 늪에 빠지면서 청년층은 기회 자체가 적어 경쟁이 전쟁이 되고 친구는 적이 되는 상황”이라며 “그래서 공정성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고 ‘시험결과만으로 해야지 왜 소수자나 약자를 배려하느냐’는 생각에까지 빠지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힘든 곳은 더 많이 배려하고 더 짧은 곳은 길게 지원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며 ‘실질적 공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샌델 교수도 능력주의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내며 맞장구를 쳤다. 그는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입학생 중 상류층 자녀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현상을 거론하며 “능력주의는 결국 평등보다는 사회 전반의 불평등을 더 가져오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샌델 교수는 “모든 사회구성원이 자신의 배경과 상관없이 정치에 참여해 사회적 문제에 관한 논의를 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샌델 교수의 말을 받아 적으며 적극적으로 공감을 표시했다.

이 후보 측은 이번 대담을 계기로 ‘이재명식 공정’이 확산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이 후보 측 핵심 관계자는 “최근 배우자 논란으로 윤 후보의 공정에 금이 간 상태에서 공교롭게도 샌델 교수와의 대담이 이뤄졌다”며 “이 후보가 공정을 키워드로 내세울 기회”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이 후보의 대담 태도를 문제 삼으며 견제에 나섰다. 윤희숙 전 의원은 페이스북 글에서 이 후보가 샌델 교수의 질문에 동문서답을 했다며 “훌륭한 분을 모셔다가 코미디를 찍었다”고 혹평했다. 샌델 교수가 “한국의 불공정에 대해 정치적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이 후보가 “교수님 의견을 더 듣고 싶다”며 답변을 회피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