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남한의 교회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고 다시 오실 메시아를 기다립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나아갑니다. 주여, 우리의 성탄 예배를 받아 주옵소서.” 탈북 성도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결연함이 배여 있었다. 북한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아픔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통성기도와 찬양은 2시간 넘게 이어졌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남과 북이 하루속히 하나 되길 간구했다.
북한선교단체 모퉁이돌선교회(대표 이삭 목사)는 지난 14일 저녁 서울 서대문구 팀비전센터 마이어즈홀에서 ‘남과 북의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성탄 예배’를 드렸다. 예배 주제는 ‘아멘,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마 5:3)였다. 성탄 예배에는 탈북민과 북한선교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코로나19로 미리 신청한 이들만 참석이 가능했다.
탈북 성도들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간증을 했다.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에게 화가 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최근 중국에 나왔다가 코로나19로 돌아가지 못하고 성경을 공부하고 있는 북한 성도가 말문을 열었다. 그는 코로나 방역으로 국경이 막힌 기간 동안 기독교인들의 따뜻한 도움 속에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고 훈련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리고 예수님 품 안에서 날마다 기도하며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라고 고백했다.
“제가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했다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요? 저는 이제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기고 평안을 누리고 있습니다. 마음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동안 가족에게 양보를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이제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는 “국경을 열지 않는 문제로 화를 내곤 했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문제라고 생각하니 화가 더는 나지 않는다”며 “오히려 긍휼한 마음이 생겨 매일 ‘우리 원수님을 긍휼히 여기시고 하루빨리 마음을 바꾸어 주세요’라고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문제도 모든 일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며 “집으로 돌아가 이웃에게 예수님 사랑의 복음을 전할 준비가 아직 되지 못해서라고 생각하니 마음의 가책을 받으며 한 말씀이라도 더 가슴에 새기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고 고백했다.
20대 탈북자는 ‘북한 친구에게 보내는 성탄 편지’를 낭독했다. 편지에는 고향에 남아있는 친구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성경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북한 주민에 대한 안타까움도 드러나 있었다.
“22살 대부분 친구는 군대 생활 중이겠지. 남조선에서도 군 생활은 힘들다지만 고향의 10년 군 복무는 너무 힘들 것 같아. 코로나로 더 어려워져 가는 고향 소식 들을 때마다 더욱 걱정이 돼. 더는 무고하고, 억울한 죽음이 나오지 않길 바라며, 나는 기도하고 있어. 친구들아, 암흑의 그 땅에서 죽음의 책으로 알고 있던 성경을 나는 보았어! 하지만 우리를 사람 아닌 동물같이 여겼던 우리 당이 숨겼던 성경에는 생명이 있었고 진리가 있었고 길이 있었어. 그 땅에서 감정이 죽어버렸던 나를 하나님은 사랑해 주셨고 죄인 중 죄인이었던 나의 죄를 사해 주시고 자녀로 불러주셨어. …이것만 기억해 줘. 하나님은 너희를 사랑하셔. 나두. 언젠가 만날 거야! 사랑하는 친구들아, 서로 사랑하고 그분의 믿음의 선물을 받길 바라! 복음 통일되는 그날까지 건강하길 바라며. 친구 ○○씀.”
탈북민들의 신앙고백을 들은 참석자들은 일제히 통성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한마음으로 간구했다. “주여, 주여.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 주옵소서.”
한국교회와 코로나19 회복, 복음 통일을 위해 기도할 때는 기도 소리가 더욱 커졌다. 한 탈북 여성은 예배가 감격스러운 듯 연신 눈물을 흘렸다. 이 여성은 “성경 말씀을 듣고 배울수록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생기는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의 이야기를 듣곤 한다”면서 “안타까운 것은 그들에게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있는 성경이 없다는 것”이라고 한국교회의 관심을 요청했다. 이어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을 섬기는 한국교회 성도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탈북민 출신 목회자 심주일(부천 창조교회)목사는 “남한에선 성탄절이 기독교 최고의 축제이지만 북한에선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생일만이 최대 명절이고 축제”라고 설명했다. 심 목사는 “아기 예수가 이 땅에 와 인류를 구원한 것을 북한 주민에게 속히 알려야 한다. 북한과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도 성탄 예배가 열렸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말과 기도로만 하지 말고 복음 통일에 행동으로 적극 나서 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어떤 어려움이 몰려와도 예수 그리스도가 북녘땅에 소망이란 사실을 전하겠다고 다짐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한 뒤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님’ 찬송을 읊조렸다.
이날 극단 ‘예배자’, 평예성가대 단원들이 바이올린 비올라 기타 건반 연주와 신나는 캐럴 등으로 예배 분위기를 이끌었다. 믿음의 그루터기인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이 성탄을 축하하는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안나의 기도’를 공연했다. 출연자들은 공연 중에 하나님이 하루속히 북한 땅을 회복해 마음껏 찬양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르짖었다.
모퉁이돌선교회는 탈북 성도들에게 ‘남북한 병행 성경’을 선물했다. 남북한의 다른 언어를 한 페이지에서 비교해 볼 수 있도록 선교회가 만든 성경이다. 이날 참석하지 않은 탈북민에게도, 모두 3500권을 전달한다. 성경 안에는 남한 성도가 탈북 성도를 축복하며 쓴 크리스마스 카드가 빨간 봉투에 들어 있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기쁜 성탄의 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함께 기뻐할 형제자매들이 있어 더욱 감사합니다. 복음 통일의 마중물인 당신을 축복합니다.”
이날 예배를 연출한 모퉁이돌선교회 미디어총괄팀장 이사야 목사는 “코로나19 때문에 온 세상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한마음으로 기도할 때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해결책을 주실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둠의 영이 이 나라를 뒤덮고 있다고 진단하고, 코로나19 때문에 무디어진 영적 감각과 시대적 통찰력을 회복하자고 주문했다.
정은주 목양팀장은 “북한선교를 하면서 정말 하나님이 북한 주민의 영혼을 사랑하시는 것을 느낀다”며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이 핍박 가운데 믿음을 지키는 것도 그렇고, 아무 연고도 없는 많은 분이 헌금하고 후원 등으로 북한 선교에 적극 참여하는 것을 보면서 큰 은혜와 감동을 받는다”고 전했다.
모퉁이돌선교회 대표 이삭 목사는 ‘시므온의 찬양’(눅 2:25∼40)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했다. 이 목사는 “존귀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은 실로 경이로운 일”이라며 “오늘 성탄 예배가 우리만의 예배로 끝나지 않고 북녘땅에도 널리 울려 퍼질 복된 성탄절이 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북한 사역자는 “북한 동포와 지하교회 성도의 신음이 들리는가. 잃어버린 영혼과 버려진 심령의 통곡 소리가 들리는가.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상하고 깨어진 심령을 치유하는 길, 이 땅을 고치고 회복시키는 길에 기도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성탄 예배 실황은 녹음돼 성탄절을 앞둔 19일 새벽 단파 9380㎑와 중파 1566㎑(제주 극동방송) 라디오를 통해 북한 전역으로 송신됐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