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기자 가족 통신자료 열어봐… 특정 언론인 타깃 정황

입력 2021-12-22 04:02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20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공수처로 출근하고 있다. 김 처장은 21일 휴가를 냈다. 연합뉴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언론인의 가족 등 공수처의 수사 대상 공직자와 통화한 일이 없는 이들에 대해서도 통신자료를 제공받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는 공수처가 일부 언론인을 사실상의 수사 대상으로 놓고 통신사실확인자료를 제공받은 뒤 해당 언론인의 통화 상대방 정보를 조사했다는 의혹으로 번지고 있다. 공수처는 적법 절차에 따랐다면서도 어떤 수사 목적이었는지, 그 수사의 결론이 무엇인지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법조인 다수는 공수처가 TV조선 기자 가족을 포함, 수사 대상 공직자와 거리가 있는 인사들에 대해서도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은 언론인의 ‘통신자료’가 아닌 ‘통신사실확인자료’ 확보가 있었다는 방증이라고 21일 해석했다. 통신사실확인자료는 상대방 전화번호, 통화 일시, 로그기록과 접속지 자료(IP 주소), 발신기지국 위치추적 자료를 말한다. 성명, 주민등록번호 등 기본 인적사항인 통신자료와 구별된다. 통신자료는 수사기관이 통신사 등에 공문만 보내 확보할 수 있지만 통신사실확인자료는 법원의 허가를 얻어야 수집 가능하다.

공수처는 그간 다수 언론인에 대한 통신자료 수집 사실이 드러나 ‘사찰’ 논란으로 비화하자 “주요 피의자의 통화 상대방이 누구인지 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었다. “언론인은 공수처 수사 대상이 아니다” “(통신자료제공은) 단지 가입자 정보를 파악한 적법 절차”라고도 했다. 하지만 언론인의 가족이 통신자료를 조회당한 사실은 언론인이 수동적인 ‘통화 상대방’에 머물지 않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공수처 관계자는 해당 기자가 수사 대상자인지 단순 참고인인지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법조계는 외형상 언론인이 주요한 수사 대상처럼 보인다고 해석했다. 한 검찰 고위 관계자는 “오히려 통신사실 확인 대상이 기자였고, 그 기자와 통화한 이들이 통신자료 제공 대상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공수처가 영장을 통해 언론인의 통화 상대방 등을 파악했다면 입건 여부와 관계 없이 사실상 강제수사라는 견해도 제시됐다. 김오수 검찰총장은 과거 인사청문회에서 강제수사의 정의를 질문 받고 “압수수색, 체포, 구속, 통신자료 확보 등이 해당될 수 있다”고 답했었다.

법조계는 TV조선 기자 가족 통신자료 조회가 ‘이성윤 황제조사’ 보도 경위에 대한 공수처의 내사와 연관됐을 것이라고 본다. 공수처는 TV조선이 이성윤 서울고검장(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의 지난 3월 김진욱 공수처장 관용차량 이용 장면을 CCTV 입수 형식으로 보도하자 내사에 착수했었다. 당시 이 고검장을 수사하던 수원지검 수사팀이 해당 CCTV를 언론에 흘렸을 것이라는 공무상 비밀누설 의혹에서 비롯한 내사였다. 하지만 수원지검 수사팀은 사실무근이라고 했고, 공수처는 이 공무상 비밀누설 의혹에 대한 결론을 뚜렷하게 제시하지 않았다.

이번 일이 단순히 언론인들의 소동이 아니며 국민 전반의 기본권 문제를 환기한다는 지적도 있다. 수사기관의 광범위한 조회, 당사자의 뒤늦은 파악 등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각자의 통신사에 통신자료 제공 여부를 열람 신청하는 움직임은 각계에서 커지고 있다. 김 처장은 지난 1월 인사청문회에서 “헌법 원칙에 따른 품격 있고 절제된 수사를 공수처의 원칙으로 하겠다”고 했다. “강제수사를 할 때는 수사한 검사의 의지만으로 결정되지 않게 내부에 장치를 만들겠다”고도 했다. 그는 이날 휴가를 냈다.

이경원 구승은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