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2월 3일. 22세 영국 청년 닐 팹워스는 컴퓨터에서 짧은 메시지 하나를 보낸다.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 테스트용이었다. 이를 받은 사람은 이동통신회사 보다폰의 이사 리처드 자비스. 문자는 그의 노키아 초창기 휴대전화로 보내졌다. 세마그룹텔레콤 엔지니어 팹워스는 보다폰의 단문메시지서비스를 개발 중이었다. 그때는 몰랐을 것이다. 이게 세계 최초의 문자 메시지로 공인될 줄은. 이렇게 시작된 문자 메시지는 세상을 바꾼 도구가 됐다. 이후 등장한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의 원형이 됐으니 말이다. 팹워스는 영국 언론에서 “훗날 문자 메시지가 이렇게 대중적인 서비스가 될 줄 몰랐다. 지나고 보니 내가 보낸 크리스마스 메시지가 모바일 역사의 전환점이 됐다”고 말한 바 있다.
29년 전 한 통의 문자 메시지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22일 프랑스 파리에서 이 문자 메시지가 경매에 부쳐지기 때문이다. 보다폰은 ‘MERRY CHRISTMAS’라는 짧은 메시지를 NFT(Non-Fungible Token·대체불가토큰)로 발행해 경매에 내놓는다. 세계 최초의 문자 메시지를 영원불멸한 것으로 남긴다는 계획이다. NFT는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자산. 가상 자산에 희소성과 유일성이란 가치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에 최근 그 영향력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보다폰은 블록체인과 NFT의 발명은 문자 메시지가 이룬 엄청난 진보에 비견할만하다고 평가했다.
예상 경매 낙찰가는 2억원이 넘는다. 수익금은 전액 유엔난민기구에 기부된다. 경매를 주관하는 프랑스 업체 아구츠(Aguttes)는 “세계 최초의 책, 세계 최초의 전화 통화, 세계 최초의 이메일 등 모든 발명품은 우리 삶을 바꿔놓았다. 1992년 세계 최초 문자메시지는 인류 역사의 증거이자 기술적 진보”라고 평했다. 보다폰이 첫 문자 메시지를 NFT로 발행했듯 누구에게나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메시지가 하나쯤 있지 않을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계절, 당신의 가슴에 남은 최고의 문자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한승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