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대만 장관급 인사를 국제 콘퍼런스에 초청해놓고 행사 당일 연설을 취소했다며 대만 외교부가 공개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대만 언론은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해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4차산업위는 지난 16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2021 4차 산업혁명 글로벌 정책 콘퍼런스’를 온·오프라인으로 개최했다. 대만 외교부는 한국 측이 지난 9월 탕펑(오드리 탕) 디지털 담당 정무위원(장관급)을 콘퍼런스에 초청했고, 그가 대만의 디지털 사회 혁신을 주제로 화상 연설할 예정이었다고 설명했다. 4차산업위가 지난 8일 홈페이지에 올린 행사 안내 자료에도 사회 혁신 분과 발표자로 ‘오드리 탕 대만 디지털부 장관’이 포함돼 있다.
대만 외교부는 행사 당일 한국 측이 돌연 탕펑 위원의 연설 취소를 통보해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 측의 결례와 관련해 주타이베이 한국 대표처 대리대표를 불러 강력한 불만을 표시했고 주한 대만 대표도 엄정한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대만 중앙통신사는 한국 측이 ‘양안 관계의 여러 측면에 대한 고려’를 취소 사유로 들었다고 전했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워 각국이 대만 정부 인사들과 공식적으로 교류하는 걸 반대하고 있다.
대만 외교부는 “중화민국(대만)은 주권국가로 세계 각국과 교류 및 왕래를 심화할 권리가 있다”며 “우리 정부는 국가 주권과 존엄을 수호하고 모든 민주국가와 협력해 자유와 민주, 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수호하는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대만과 비공식적 실질 교류를 지속 증진해 나간다는 정부의 기본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취소를 결정하는 과정에 중국 측이 개입했는지에 대해선 “그런 점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탕 정무위원의 참여를 발표까지 한 뒤 취소한 것은 이 문제가 가질 외교적 함의나 국제적 민감성을 사전에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탕 정무위원 초청은 외교부가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내 소통 부족을 노출하고 결과적으로 대만 측에도 결례가 됐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4차산업위는 2018년부터 국제기구 및 주요국 전문가들을 초청해 4차 산업혁명 정책과 혁신 사례를 공유하는 콘퍼런스를 열고 있다. 올해는 국내외 석학과 정부 고위 관료, 스타트업 대표 등 30여명의 연사들이 코로나19로 가속화된 인공지능 시대와 디지털 전환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 동향과 전략을 공유했다.
탕펑은 14살에 학교를 중퇴하고 독학으로 컴퓨터프로그래밍을 배운 ‘천재 해커’로 알려져 있다. 2016년 35세 나이에 대만 디지털 담당 정무위원으로 발탁됐다. 탕펑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지난 9~10일(현지시간) 개최한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차이잉원 총통을 대신해 대만 대표로 참석했다. 이에 중국은 미국의 대만 초청에 “결연히 반대한다”고 반발한 바 있다.
당시 탕 정무위원은 자신의 화상 연설 중 중국과 대만을 다른 색으로 표시한 지도를 배경화면으로 띄웠는데 미국 정부가 중국을 자극할 것으로 우려해 그의 연설 영상을 삭제해 이 조치의 적절성을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김영선 기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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