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애도 기회를 빼앗긴 죽음

입력 2021-12-22 04:03

강봉희씨는 대구에서 기초생활수급자, 무연고자의 시신을 거두는 봉사를 한다. 최근 낸 책 ‘나는 죽음을 돌보는 사람입니다’에서 염습 과정을 이렇게 묘사했다. ‘시신이 들어오면 그가 입었던 모든 것을 벗긴 뒤에 손발부터 시작해 온몸을 닦아 드린다. 그리고 머리를 감겨드린다. 시신이 남성일 때는 면도를 해드리는 게 중요한 일이다. 여성의 시신일 때는 면도 대신 더욱 신경을 써서 머리를 빗겨드리고, 로션을 발라드린다. 다 씻기고 정돈해드린 후에는 귀와 코와 입 등 얼굴의 구멍과 항문을 솜으로 막는다. 그런 후 두 손을 가지런히 맞잡게 놓아드린다. 이제 시신 위에 흰 천이 덮인다.’(발췌 요약) 강씨는 책에서 죽은 이에 대한 예우를 말했다. “아무리 돈이 없고 가진 게 없더라도, 죽은 이들에게 우리가 갖춰야 할 어떤 예우가 있다고 믿는다. 염장이는 그것을 지키기 위한 일을 한다.”

코로나로 사망한 사람들은 이러한 예우를 받지 못한다. 그들의 주검은 환자복 혹은 일상복을 입은 채로 비닐백에 이중으로 밀봉돼 화장장으로 옮겨진다. 화장도 일반 사망자 화장이 다 끝난 뒤 오후 가장 늦은 시간에 치러진다. 유족은 고인을 애도할 시간을 갖기 어렵다. 국민일보 취재팀은 지난해 3월 대구에서 코로나 사망자 여섯 명의 가족을 만났다. 한 50대 여성은 어머니 시신을 유리문 너머로 본 게 이별 의식의 전부였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본 시간은 불과 3초. 이 여성은 “그 모습을 못 잊을 것 같다”고 했다. 10개월 뒤 다시 연락이 닿았을 때도 수의를 입히지 못하고 떠나보낸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을 토로했다. 유족은 빈소를 뒤늦게 차린다. ‘선 화장 후 장례’ 지침에 따라 사망하면 화장부터 하기 때문이다. 유행 초기에는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대구에서 아버지를 잃은 40대 남성은 코로나가 종식되면 추모제 형식의 장례를 치르겠다고 했다. 유족 상당수는 밀접접촉자로 격리된 상태에서 가족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서로 떨어져 있는 기간 녹음한 고인의 영상이나 목소리를 나중에 반복해 보고 듣는 유족도 있다. 임종을 못 하고 애도의 과정도 생략된 이별. 유족은 더 오랫동안 슬퍼하고, 그 슬픔은 한이 된다. 취재팀이 올해 초 다시 연락한 코로나 유족 5명은 모두 우울증과 수면장애 등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월 국회에서 애도 기회를 빼앗긴 장례 문제를 지적했을 때 곧 의미 있는 변화가 있을 줄 알았다. 정세균 당시 국무총리가 현실성 있는 지침 마련 주문에 “검토하겠다”고 답해서다. 다른 여야 의원이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를 지적했지만 아직 변한 건 없다. 지난 14일 국민일보 서울시립승화원 르포 기사를 보면 한 유족은 관에서 약 15m 떨어진 곳에서 40초간 짧은 작별을 했다. 입히지 못한 수의는 관 위에 얹어야 했다.

한국의 코로나 장례 지침은 세계보건기구(WHO)나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안내와 다르다. WHO 문서를 보면 코로나 사망자 시신은 화장뿐 아니라 매장도 가능하다. 장례 준비를 마친 시신에 대해 유족, 지인의 접촉은 금지되지만 참관은 가능하다. 참관 뒤 손을 비누로 깨끗이 씻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있을 뿐이다. CDC는 시신에 의해 코로나에 감염될 위험은 거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질병관리청은 최근 장례를 먼저 치른 후 화장이 가능하도록 지침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여러 언론이 이 문제를 지적한 데 대한 반응으로 보이는데, 한참 늦은 조치다. 하루빨리 지침을 고쳐 유족이 충분히 애도할 시간을 갖게 해야 한다.

권기석 이슈&탐사팀장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