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언론사찰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 공수처의 해명으로는 기자의 가족이 통신 조회 대상에 포함된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공수처는 불법은 없고, 수사 중인 사안이어서 답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옳지 않은 태도다. 누구를, 왜 통신 조회를 했는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 과정에 불법이 있었다면 책임지는 게 마땅하다.
이번에 새로 제기된 의혹은 공수처가 김진욱 처장의 ‘황제 조사’를 보도한 언론사 소속 기자의 통신사실확인 조회를 근거로 다시 통신 조회에 나섰다는 것이다. 통신 조회는 수사기관의 요청에 따라 통신사가 사용자의 이름, 주민번호 등 개인의 가입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대상이 벌써 15개 언론사의 기자 50여명에 달해 수사 대상에서 배제하기 위해 조회했다는 공수처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구시대 나쁜 수사 관행을 답습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런데 공수처가 비판적 기사를 쓴 기자의 가족을 통신 조회를 했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통신 조회 대상자가 누구와 통화했는지 알려면 상대방 전화번호와 통화 날짜·시간이 포함되는 통신사실확인 조회를 해야 한다. 이는 공수처가 해당 기자를 수사 대상으로 삼았고,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에 따르면 기자는 공수처 수사 대상이 아니다. 결국 공수처가 민간인 신분인 언론 종사자를 ‘사찰’하기 위해 권한을 남용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문제가 후진적 독재국가에나 남아 있는 언론탄압으로 비화된다면 국가적 망신이다. 내가 쓴 기사 때문에 수사기관이 내 가족의 개인정보를 조사했다고 생각하면 기자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검찰의 수사권 남용과 자의적 기소를 뿌리 뽑겠다며 출범한 공수처다. 독재정권 시절 악명 높았던 정보기관과 다를 게 없다는 손가락질은 받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