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경의 에듀 서치] ‘내로남불’에 지친 학부모를 위한 자녀접종 설득법

입력 2021-12-21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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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 국무총리와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학부모 설득에 팔을 걷어붙인 모습입니다. 자녀에게 코로나19 백신을 맞혀달라는 얘기죠. 이들의 설득 작업은 중요해 보입니다. 우선 12~18세 ‘청소년 방역 패스’ 도입 시기와 적용 범위, 방식 등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이는 그 아래 연령인 5~11세 접종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올해 전면등교 유지 계획은 코로나 확산세에 불발됐지만, 내년 새 학기 학교 정상화는 학생 접종률에 달렸다는 게 정부 판단입니다.

정부는 내년 2월 1일 청소년 방역 패스 도입 방침을 밝혔다가 강한 반발에 놀라 이달 중에 ‘개선안’이란 걸 내놓기로 한 걸음 물러섰습니다. 정부 내부 회의자료를 보면 여러 방안이 검토되는 중입니다. 보름 늦춰 2월 15일 시작하는 방안부터 3월 혹은 4~5월 다양한 시점이 논의 테이블에 올라 있습니다.

변수는 학부모 여론일 겁니다. 청소년 방역 패스 연기 여부와 시점을 철저히 함구한 채 학부모 설득에 부심하는 모습에서 2월 1일 강행부터 차기 정부 결정으로 미루는 방안까지 선택지가 다양하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열흘 정도 설득한 뒤 학부모 여론이 움직였다는 판단이 들면 예정대로 강행 혹은 2주 연기 카드를 꺼내들고, 여의치 않으면 청소년 방역 패스를 장기 과제로 넘길 듯합니다.

학부모 마음은 과연 움직일까요. ‘설득 커뮤니케이션’이란 학문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현상을 연구합니다. 언론, 광고, 마케팅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됩니다. 기존에 형성된 태도를 바꾸거나, 이미 형성돼 있는 태도를 강화하거나 새로운 태도를 형성하는 ‘태도 변용’이 주된 관심 영역입니다.

정부는 끊임없이 설득을 위한 메시지를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기존에 형성된 태도를 쉽게 바꾸려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오히려 자녀 백신 접종에 부정적인 기존 태도를 더 굳히는 모습입니다. 정부는 이를 진지하게 들여다보지 않고 “가짜 뉴스에 현혹되고 있다” “과학을 모른다”는 식으로 학부모들을 몰아붙이고 있어, 양측의 간극은 더 커지는 형국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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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설득 메시지에 결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설득 커뮤니케이션학은 태도 변화를 일으키는 설득 메시지에는 두 가지 조건이 꼭 필요하다고 합니다. 전문성과 도덕성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판단입니다. 수용자가 두 조건에 고개를 끄떡여야 태도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전문성은 ‘메시지 생산자가 해당 사안을 충분히 알고 말하는가’입니다. 정부에 자문하는 전문가들이니 전문성은 충분히 수긍할 수 있습니다. (‘검증 제대로 안 된 백신이므로 전문가들도 모를 것’이란 태도까지 돌리긴 어렵지만, 압도적으로 많은 정보와 정보 해석 능력을 갖춘 전문가들의 얘기에 대다수 학부모들은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정부가 설득에 난항을 겪는 이유는 도덕성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앞세우는 전문가들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전문가들이 얼마나 소신껏 자신의 뜻을 말할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즉 ‘메시지 생산자의 말에 어떤 불온한 의도가 있지 않은가’ ‘과연 메시지 생산자를 믿을 만한가’입니다. 정부와 여러 가지가 얽혀 정부 방침에 동조하고 있거나 혹은 정부가 협조적인 전문가들만 대중에 노출시키고 있다는 의구심일 것입니다. 이들 전문가가 ‘어용’이란 소리가 아닙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설득의 장에서 중요한 건 메시지 수용자, 즉 학부모들의 관점입니다. 학부모들의 의구심을 떨칠 수 있는 메시지여야 설득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 그 잘난 과학의 관점에서 백신 접종의 이득이 크다 말하는데 전문가 당신들 자녀는 맞혔는가.’ 학부모 입장에선 당연한 의문입니다. 메시지 생산자의 도덕성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있는 중요한 질문이죠. 사회지도층의 내로남불 행태가 지긋지긋한 평범한 학부모 입장에서는 더욱 그럴 수 있습니다. 앞에선 외고·자사고 없애자고 목소리 높였는데 뒤로는 자기 자녀를 외고에 보낸 교육감들이 있었죠. 이른바 ‘가재 붕어 개구리론’으로 큰 울림을 줬던 전 법무부 장관 일가는 반칙까지 써가며 자녀를 용으로 만들려다 덜미를 잡혔습니다. 이런 내로남불 사례들은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래서 정은경 청장이 이끄는 질병관리청의 자녀 백신 접종 현황은 학부모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열쇠입니다. 하지만 자녀의 백신 접종 여부를 공개해달라는 야당 국회의원의 요구에 ‘개인 및 자녀 신상에 관련한 사항’이란 이유로 불응하고 있습니다. 해당 의원은 “과거 질병관리청 자녀들의 독감백신 접종 현황이 공개된 전례가 있다”며 재차 압박 중인데 통할지 미지수입니다. 학부모 입장에선 비공개도 중요한 정보입니다. “그들 자녀의 백신 접종률은 공개 못할 수준이군”이라는 메시지입니다.

더 확실한 설득법도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손자들이 공개 접종하는 일입니다. 방역 관련한 모든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인물이 스스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에게 접종하는 일은 학부모 입장에서 매력적입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5~11세 아동 접종도 신속히 검토하라”고 방역 당국에 지시한 바 있습니다. 이 메시지에 관여한 청와대 참모들과 정 청장 등은 문 대통령에게 “손자분들 접종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을까요. 문 대통령은 과연 이들의 조언을 믿고 손자 접종을 결심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학부모 설득을 위한 메시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