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은 중국 영토지만 중국 헌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1984년 발표된 영·중 공동선언(홍콩반환협정)에 명시된 일국양제 원칙 때문이다. 1997년 영국령 홍콩이 중국 홍콩특별행정구가 되면서 여기에 기초한 홍콩 기본법이 헌법을 대신한다. 비록 주민투표 대신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통과됐지만 기본법에는 2047년까지 50년 동안 보장키로 한 홍콩 주민의 기본권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국회의 권한과 기능을 가진 입법회의 법률 제정권, 예산 의결권 관련 규정도 있다.
하지만 주민의 동의 절차가 생략된 기본법은 본토의 권력 앞에서 무력했다. 2019년 홍콩 민주화운동으로 곤욕을 치른 중국 정부는 지난 3월 13기 전인대에서 기본법을 개정했다. 핵심은 입법회 장악이었다. 지난해 반중 시위를 엄하게 처벌하는 내용의 국가보안법이 전인대에서 확정되자 국제사회에서는 덩샤오핑이 보증한 약속이 깨졌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건드리지 않겠다던 홍콩 자치의 핵심이 바로 입법권이다. 자신이 제시한 원칙을 지키지 못한 중국 정부는 어떤 경우라도 친중파가 입법부 다수를 차지하도록 헌법인 기본법을 바꿔버린 것이다.
그 결과가 지난 19일 치러진 입법회 선거다. 어차피 전체 의원 90명 가운데 20명만 주민 직선으로 뽑고, 나머지 70명은 친중 인사로 채워지도록 설계됐다. 반발한 반중 인사들은 아예 출마하지 않았다. 너무 뻔해 누구도 결과에 관심이 없다. 30%를 겨우 넘겨 역대 최저를 기록한 투표율이 더 화제다. 중국은 미국식 민주주의가 한계를 넘어 근본적 오류에 봉착했다고 주장한다. 이를 중국적 가치로 극복하겠다고 했다. 인민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직접 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려 했고, 헌법 1조에 ‘사회주의 제도 파괴 금지’를 못박은 중국이니 그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개인의 인권과 표현의 자유까지 ‘애국자가 다스리는 홍콩’이라는 정치 구호로 덮어버리는 것은 곤란하다. 인민이든 뭐든 어떤 수사(修辭)를 붙여도 민주주의가 아니다.
고승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