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성공적인 노동이사제 도입의 조건

입력 2021-12-21 04:02

최근 양대 정당 대선 후보들이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에 긍정적 입장을 보이면서 관련 입법 추진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전통적 노사 갈등을 완화하고 산업민주주의 실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존재하지만, 경제계를 중심으로 노동이사제의 부정적 효과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작지 않다. 노동이사제 도입이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 영향의 핵심적 근거는 노동자들의 현장 전문성과 사용자들의 경영 전문성이 전략적 의사 결정 단위인 이사회에서 어우러져 해당 기관의 효율성과 정당성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성을 구분하는 다양한 접근법이 있겠지만, 노사관계 관점에서 조직에 필요한 전문성은 현장 전문성과 경영 전문성으로 구분된다. 이 둘은 상호 배타적이다. 현장 전문성이 다양한 작업장의 구체적 상황에 관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노하우와 능력을 의미한다면, 경영 전문성이란 시장 수요 트렌드, 기술 개발 추세, 경영이론과 기법에 관한 정보를 토대로 경영의 주요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역량을 말한다. 현장 전문성이 경영 전문성 영역을 포괄하기 어렵듯이, 아무리 뛰어난 경영자라고 하더라도 현장의 구체적 맥락에 관한 방대한 노하우를 모두 섭렵하기는 어렵다. 해당 조직이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강화하고 사회적 정당성을 증진하려면 다양한 의사 결정 수준에서 현장 전문성과 경영 전문성이 조화롭게 반영되고 화학적으로 결합될 수 있어야 한다.

조직에서 이뤄지는 의사 결정 수준은 크게 작업장 혹은 사무실의 업무적 수준, 중간관리자의 관리적 수준, 이사회의 전략적 수준 등 세 가지로 구분된다. 업무적 수준에서 양질의 의사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현장 전문성에 절대적 기반을 둬야 하지만, 경영 전문성이 부분적으로 반영돼야 현장 전문성에 방향을 제시하고 통합적 의미를 보완할 수 있다. 관리적 수준에서 적절한 의사 결정을 내리려면 미시적인 현장 전문성과 거시적인 경영 전문성을 조화롭고 균형 있게 융합할 수 있어야 한다. 전략적 수준에서 훌륭한 의사 결정을 내리려면 주로 경영 전문성에 의존해야 하지만, 수립된 전략이 실행되는 현장 상황을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는 현장 전문성이 보완적으로 작용해야 한다. 노동이사는 현장 전문성을 활용해 수립된 경영 전략이 실행될 때에 현장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또한 노동이사의 전략적 의사 결정 참가는 경영 전략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노동이사제 도입으로 예상되는 대표적인 부정적 효과는 노사 간 신뢰 부족으로 갈등적 노사관계를 보이는 조직에서 갈등을 심화하거나 의사 결정을 현저하게 지연시켜 그 질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신속한 의사 결정은 전통적인 한국적 경영의 장점으로 인정됐다. 그러나 저성장 시대에 한 차원 높은 수준의 경영을 실현하기 위해 의사 결정 속도를 다소 늦추더라도 구성원들로부터 적극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의사 결정의 질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노동이사제 도입이 기업 경영과 사회 전반에 미칠 수 있는 긍정적 효과를 강화하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려면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할까. 무엇보다 조직의 경영진이 노동자들의 현장 전문성을 인정하고 이를 발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사용자들의 경영 전문성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이를 위해 선출된 노동이사들에 대한 재무 및 경영 교육이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다. 또한 기존 이사진은 현장 전문성을 어떻게 적극 활용할 수 있을 것인지 탐색적 학습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어떤 제도도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측면을 갖기 마련이다. 그 자체로서 완벽해, 도입되기만 하면 기대하는 효과가 저절로 나타나는 제도는 없기 때문이다. 지속적 보완과 수정 과정을 통해 노사 간에 공동의 학습이 이뤄져야 한다.

이상민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